자식 뒷바라지보다 老後 준비가 먼저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부모 품을 떠났던 자식이 대학을 나온 뒤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선진국 대부분에서 성인이 된 뒤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젊은이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부메랑 세대'라고 한다.
미국에선 25~34세 인구의 30%가 부모 집으로 돌아갔거나 한때 머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학 학자금 대출을 포함해 평균적으로 4만5000달러를 빚지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그 빚을 갚아나가면서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집세라도 아끼기 위해 부모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부메랑 세대를 돌보느라 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1946~1964년에 태어난 미국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5%가 성인이 된 자녀들의 생활비와 집세, 학자금 대출 상환 등을 지원한다고 했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있다는 답변은 2007년 44%에서 24%로 줄었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자신들의 노후(老後)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비붐 세대의 불안한 미래를 경고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부모들의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LG경제연구원은 부모들이 자녀를 독립시킨 뒤 본격적으로 은퇴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2010년 현재 8.7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분석했다. 부모의 평균 은퇴 연령과 자녀의 평균 취업 연령, 부모와 자녀의 평균 나이 차이를 감안한 결과다. 같은 기준으로 계산한 미국 부모들의 은퇴 준비 기간 15년보다 6년 이상 짧다.
사교육비 부담 등을 감안하면 은퇴 준비 기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한국의 가계 소비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4%로 미국 2.6%의 세 배에 가깝다. 여기다 대부분 자녀 결혼 비용까지 부담한다. 은퇴한 부모가 자식 결혼시키기 위해 수천만원을 빚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노후 준비가 더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국가 부도 상태인 그리스의 노인 빈곤율 23%보다 배나 높다. 게다가 베이비붐 세대 700만명이 본격적으로 은퇴 시기를 맞고 있다. 대부분 국민연금 외에는 별다른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다. 이제부터 노인 빈곤층 수백만명이 쏟아져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결혼과 출산 연령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2030년에는 부모의 은퇴 준비 기간이 3~5년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수명 100세 시대에 대다수 은퇴자가 빈손으로 노후를 맞는 것은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정년(停年)을 연장하고, 노인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으로 노인 빈곤 문제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부메랑 세대의 부모들에게 "자식이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본인의 노후 생활까지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자식 뒷바라지보다 본인의 노후 준비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야박한 소리로 들리지만 귀 기울일 부분이 있다.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할 생각이 없다면 스스로 미래를 챙기는 게 당연하다. 최소한 중산층은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가 자식에게 모든 걸 쏟아붓고, 자식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족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게 노인 빈곤의 국가적 재앙을 막고, 자식 세대의 부담도 줄이는 길이다.
조선일보 김기천 논설위원
'━━ 지성을 위한 ━━ > 세상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픽 선수단 6.25영국참전용사 기념비 참배 (0) | 2012.08.16 |
---|---|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에 대한 상세한 역사적 자료 (0) | 2012.08.15 |
피아노의 금메달 (0) | 2012.08.13 |
노인의 성문제 주제로 박사학위 받은 산림조합장 김광태 (0) | 2012.08.12 |
[런던2012]한국축구, 올림픽 잔혹사 깼다 (0) | 2012.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