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자신의 신앙을 분별하라.

Joyfule 2019. 1. 22. 19:16



 
     자신의 신앙을 분별하라.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당대 최고의 신앙인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통째로 암송해서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안식일준수와 십일조는 물론 600여 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이었다. 예수님의 첫마디가 독사의 새끼들이었으며, 교인들을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고 저주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종교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율법주의자들이 율법의 조항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한 것처럼, 종교주의자들은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들을 철저하게 이행함으로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경에 어긋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앙행위를 하는 속내와 마음이다. 종교주의자들은 신앙행위를 통해 자기 의를 드러내고 자기만족으로 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하는 자녀들을 찾고 계신다.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는 예배의식에 열정적으로 참석해서 성경지식을 쌓아두며,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충성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름도 없이 한적한 시골에서 자그마한 신앙공동체를 섬기는 필자가, 거대한 우리네 교회에 대항해서 그들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필자는 기존 교회에 맞서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요구하신 명령들을 지키려는 것뿐이다. 성령께서는 책 두권이 넘는 방대한 말씀으로 필자가 해 나가야 할 사역의 지침을 말씀해주셨다. 그 사역은 귀신들의 활동성을 알리고 귀신들을 쫓아내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며,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통해 기도의 일꾼과 귀신과 싸워 이기는 정예용사를 양육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역은 설교나 집회를 통해 성경지식을 쌓아두거나, 교회봉사나 전도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귀신이 잠복해서 질병을 일으킨 정신질환자들과 각종 고질병 환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고, 필자가 오랫동안 해왔던 기도방식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필자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동역자들을 배출하는 사역이다. 성령께서 필자에게 해주신 예언의 말씀들을 기록하고 선포하여 널리 전하라고도 명령하셨기에, 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인터넷 칼럼이나 유투브 동영상으로 이 말씀들을 알려드리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백안시하는 우리네 교회에서 필자의 사역의 행태를 고운 눈으로 바라볼 리가 만무하다. 그동안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과 귀신의 조종을 받는 목회자들이 예언이나 귀신 쫓음, 치유사역을 통해 물을 많이 흐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의 사역도 그들의 눈에는 이단비스무리하다고 여기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필자의 사역은 교인들에게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성경공부를 시켜서 성경지식을 쌓아두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봉사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게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는 투의 사역을 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한적한 시골에서 시작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사람이 많은 대도시나 신도시에서 사역을 시작했어야 한다. 그러나 필자의 사역은 기존의 우리네 교회에서 시행하는 방식의 사역이 아니다. 정신질환이나 고질병 혹은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지난한 삶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시켜서 성령의 능력을 지닌 정예용사를 양육하는 사역이다. 그래서 영성학교에 오는 사람들은, 시골이 아니라 산골에 있다고 하더라도 물어물어 찾아올 만한 이유와 동기가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영성학교 주변으로 아예 이사를 와서 눌러 앉은 분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전국 각지에서 영성학교 공동체를 섬기려고 찾아온다. 그들도 처음에는 자신들의 지난한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이 전부였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어 기존의 자신이 다니던 교회로 돌아갈 생각을 접었다. 그래서 기존 교회의 목회자들은 필자의 사역을 곱게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14:1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15:18,19)

 

우리네 교회의 목회자들의 사역의 목적이 무엇인가? 복음을 전파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은 자신이 한 사역을 할 것이라고 명백하게 선포하셨으며, 승천하시면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능력으로 증인된 삶을 살 것이라고 밝히셨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기적과 이적을 드러내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는 말씀이 완성된 시대에, 그런 성령의 능력이나 은사 따위는 필요 없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행한 사역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영성학교를 찾아왔으며, 그중에는 목회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 목회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를 채우려고 영성학교를 찾아왔지만, 자신의 교회로 돌아가면 여전히 예전의 방식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단교리와 신학자들의 성경해석이 주류가 되어있기에, 필자가 무어라고 떠들어대든지 무슨 사역을 하든지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이 땅에서 지옥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벌리는 것이다. 어차피 필자가 요구하는 기도훈련이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삶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심정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 필자가 이 얘기를 하는 목적은, 우리네 교회에서 행하는 사역이 예배의식에 참석해서 성경말씀을 머리에 쌓아두거나, 교회조직을 지탱하거나 외형적으로 교회를 키우는 일에 순종하고 충성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분별하라는 것이다. 설교의 내용이 과연 성경말씀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예수님의 명령과 같은지 분별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심판대 앞에서는 무슨 교단소속의 교회에 다녔는지 물어보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