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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꽃의 향기 - 경길자

Joyfule 2013. 7. 15. 10:03

 

 

작은 꽃의 향기  - 경길자


 

 


 일주일에 한 번씩 노환으로 누워 계신 친정어머니를 찾아간다. 뜨거운 햇빛을 챙 넓은 모자로 가리고, 피곤한 발걸음을 옮기며 양로원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뫼르소와 무엇이 다르랴 싶다.

  친정을 가까이 두고 자주 찾아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주위의 말이 어느 때는 힘겹게 들린다. 건강하실 때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지만 어머니가 이제 나에게 건네는 말은 오직 아픔에 관한 질문뿐이다. 아파트가 가까워지면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며 밝은 얼굴로 들어설 준비를 한다.

  아파트 보도블록 양쪽으로 가지런히 심겨진 쥐똥나무에 좁쌀 같은 하얀 꽃이 피었다. 이 오솔길을 벌써 일 년 넘게 오갔다. 빈 가지만 엉클어져 있던 겨울나무에서 연둣빛 잎을 달고 새로 피어난 듯하던 나무가 어느새 진초록으로 변하더니 꽃을 피웠다. 오늘따라 무더위 속에서도 선들선들 바람이 불어오는데 짙은 꽃향기가 실려 온다. 어디에 아카시아 나무가 있나 눈여겨보아도 잎이 무성한 다른 나무들뿐이다.

  걸음을 멈추고 쥐똥나무의 미세한 꽃송이에 냄새를 맡아 본다. 아카시아 꽃보다 덜 야하고 정제된 향수 냄새가 가슴속까지 스며온다.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한 번 그 꽃에 얼굴을 가까이 대본다. 눈에 띄지도 않는 이 작은 꽃에서 이토록 강하고 순결한 향기가 품어 나온다는 게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손가락 마디만한 꽃송이를 꺾어 가지고 올라가 어머니의 코에 대고 어떠냐고 했더니 꽃 냄새가 나는 것 같으나 예전같이 냄새를 잘 못 맡겠다고 하신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그 향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도 생리적 현상의 하나이지만 먹는다거나 만지는 것과는 다른 추상성이 있는 것 같다. 가을 햇살 내리는 손수레에 가득한 모과 향기나 겨울밤 거리에 스쳐가는 군밤 냄새는 쓸쓸한 삶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찻집 앞을 지날 때 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매혹적인 커피 향기나, 사기 주전자에 녹차 물을 따를 때의 은은한 차향은 친구를 그리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가 볼까 부끄러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쥐똥나무 꽃줄기를 한 10센티 정도로 해서 대여섯 개 겪었다. 작은 포도주 잔에 꽃을 꽃아 식탁 위에 놓고, 아침에 받아 놓고 미처 뜯지 못한 『월간문학』 펼쳐 낯익은 이름의 <향수(香水)>라는 수필부터 읽기 시작했다.

 ‘모임에서 찍은 사진을 문우에게 전해 주었더니 즉석에서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핸드백 속에 넣어 두었던 향수를 내 손에 꼭 쥐어 준다'라는 서두가 나를 지칭한 것이란 느낌이 들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일이 새삼스런 감동으로 살아난다. 그날 모임에서 사진을 전해 주는 문우의 발랄한 모습을 보자 무언가 꼭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게 갖고 있던 향수였다. 수필 관계의 모임이 있을 때 마주치는 그의 인상은 이상하게도 아카시아나 백합 같은 흰빛으로 비추어졌다. 그는 향수를 모은다며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받아 주었으나 쓰던 것을 주어 혹시 결례가 되지 않았을까 마음 쓰였지만 얼마 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말했듯이 우리는 바람의 인연으로 만났다. 모 문예지에 <바람>이라는 그의 글이 실린 후에 나의 바람에 관한 글이 실려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서로를 깊이 알지는 못하나 멀리 두고 바람으로, 향수로 만나는 묘미 또한 즐거운 일이다. 그날 그에게서 품겨 오는 것은 향수가 아닌 사람의 향기였을 것이다.

  남편은 생각나면 작은 화분을 하나씩 사들여 베란다를 가득 채워놓았다. 재미없는 마누라 대신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마음 붙이며 사는 것 같다. 초봄에는 동백꽃이 탐스럽게 피었고, 시크라멘이나 내가 모르는 물들도 많이 피었다. 꽃이 마음에 들어 이름을 물으면 남편은 화원에서 가르쳐 주었는데 잊어버렸다고 한다. 나도 그 순간만지나면 꽃 이름에 대해선 무심히 지내고 만다.

  남편은 저녁에 장미 한 다발을 사들고 왔다. 나를 위해 사왔다고 생색을 낼 수도 있는데 버릇처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너무 피어버렸다'고 한다. 노랑·빨강의 장미와 쥐똥나무 꽃을 나란히 놓고 번갈아 냄새를 맡아 본다. 요즘 재배해서 파는 꽃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장미에서는 아무 향기가 나지 않는다. 향수에도 분명 장미향이 있고, 예전에는 장미꽃의 독특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는데 풀냄새 만난다. 꽃 재배하는 사람들이 향기까지 살려낼 수는 없을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사온 꽃 중에 향기 짙은 꽃이 있었다. 잎은 서양란 같이 생기고 연보라 방망이 꽃으로 일본 사람이 재배한 것이라 한다.

  나는 꽃 모양보다 향기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내가 사들인 것은 치자꽃 화분이다. 지금쯤에는 꽃은 다 지고 푸른 잎만 무성하게 자라는데 치자꽃은 밤이 되면 향기가 더 진동하는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낮의 번잡한 움직임이 멈추고 불순물이 섞인 공기도 정화되기 때문인가 보다. 늦은 봄밤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전설대로 치자꽃 속에서 한 미소년이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꽃이 여성으로 상징되어선지 미소년보다는 순결한 처녀가 더 어울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분방하거나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한 상아빛 꽃송이가 더욱 그러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꽃, 멋스러운 꽃, 기품 있는 꽃, 귀여운 꽃, 소박한‥ .  이러한 꽃의 모양을 열거하다 보면 자연히 여성과 연관을 짓게 된다. 거기에 독특한 향기를 곁들이면 꽃의 가치는 완벽하게 자기 개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리라.

  꽃의 생김새나 향기나 모두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나는 오늘 보잘것없는 쥐똥나무 꽃에서 향기의 위력을 발견한 셈이다. 그것이 바로 꽃의 생명이라는 깨달음마저 갖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아름다움과 진실이 있다. 꽃의 생김새가 아름다움이라면 향기는 진실이 아닐까.
다음번에는 또 한 번의 공중도덕을 무시하고 어머니에게 쥐똥나무 꽃을 한 아름 꺾어다 드리고 싶다.


수필가. 한국수필등단. 한국수필작가회원. 작고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