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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I장 복음서의 기록 - 복음의 형성과정

Joyfule 2007. 7. 11. 03:17

I장. 복음서의 기록

1. 복음의 형성과정

예수는 자서전을 쓰시지 않았다. 예수는 글이라고는 아무것도 남기시지 않았다. 그저 그를 알고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자기와 자기의 가르침을 일임하셨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복음서라 일컬어지는 작은 네 책은 우리의 제1원리가 되며 세계를 변화시켜온 생애와 말씀에 관한 유일한 정보원인 셈이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가 보다 많고 자세하게 기록되었으면 하고 바랄런지 모른다. 그러나 복음의 기록이 짧긴해도 그것으로 충분함을 우리는 아는 것이다. 복음은 모든 시대 종족에게 그리스도를 주었다.

 

엄격히 말하면 복음은 전기가 아니다. 예수의 지상 생애는 30여년 남짓되는 기간을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은 책들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도 있는 짧은 것이다. 예수의 생애의 대부분은 완전히 침묵 속에 보내어졌다. 요한은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요한복음 21:25)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한편의 "언행록"(memoirs) 곧 회상록 선집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목적이 있는 선집이다.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31).각 전도자는 선생의 모습을 묘사하는 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각자 그 나름의 각도에서 쓰고 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예수의 초상화를 네개 갖고 있는 셈이다. 이점은 오늘의 우리에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예수는 너무 크시고 경이로운 분이므로 어느 한 사람의 관찰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초상화가 그 나름의 특징을 갖고는 있어도 모두가 동일한 예수를 그리고 있다. 곧 그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가지신 예수인 것이다.

 

얼마후에 다른 "복음들"이 각기 면면을 들어내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복음서들"이 신약성경으로부터 제외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들 속에는 사실과 전설이 풀수 없이 뒤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네 복음서 중 제일 일찍 기록된 것은 서기 65년내지 70년 사이에 나타났을 것 같다. 즉 예수의 지상사역이 끝난이후 35년 내지 40년 어간에 나타났던 것같다. 그 사이에 어째서 이렇게 장기간의 시일이 경과했을까? 오늘 같으면 위인이 죽을때 그 친구들이 한 세대 이상이 경과한 후 그의 "전기"를 출판해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인 것이다. 전도자들이 이 명백한 의무를 지연시킨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일까?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것은 지연이 아니었다. 이렇게 늦어진 한가지 이유는 그들과 거의 모든 초대교회는 세계를 복음화하는 일에 너무 바빴고 그들이 활발한 활동에 너무 열중하여 여념이 없었고, 왕되신 이의 업무가 너무 급한 것이라 확신했음으로 이런 유의 문서사역은 옆으로 떠밀려져 나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대 기독교인들의 대다수는 이 세대가 속히 끝날 것을 예기하고 있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님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라고 하시지 않았으며 다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이런 기대가 책들을 써 내는 일을 별 필요 없는 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부활, 승천하신 주께서 제자들에게 계속 나타나신 일은 그들 대다수에게 있어 너무 생생하고 현실적이어서 처음에는 그들이 예수의 말씀고, 주께서 육신을 입으셨을 때 행하신 일로 계속 되돌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이런 까닭에 날이 불어서 달이 되고 달이 늘어서 해가 되었다. 그래서 한 세대가 지나간 후에야 최초의 복음이 나타나게 되었다.

 

예수의 말씀과 행동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은 전도자들이 기록하기 이전에도 이미 있었다. 예를 들어 누가는 그가 기록한 복음의 처음 몇절에서 그가 잡다한 많은 자료들을 정선해서 그 자신의 기록을 작성하는 일에 착수했다고 말해준다. 비유,이적 이야기, 교훈의 말씀들, 안식일, 혹은 금식,혹은 기도에 대한 기록들이 여기 저기에 담겨 있었을 것이다. 전도자들은 이 정도로 그 길이 준비된 것을 발견했다.

 

이 귀절들을(눅1:1-4) 용의주도 하게 읽고 연구해야 한다. 이 귀절은 성서적 "영감"의 의미와 성서적 영감이 아닌 것을 결정함에 있어 극히 중요하다. 영감 받은 성서저자들이라 해서 기타 저자들이 직면해야 했던 어려운 역사적 연구의 필요를 기적적으로 면제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누가는 여기서 완전히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영감은 하나님이 인간의 지성과 기능을 마법을 써서 초월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영감은 하나님이 사람의 지성과 기능을 통해 자기의 의지를 표현하시는 것이다. 영감은 성서 저자 자신의 인격을 대신하여 그를 하나님의 기계 (도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영감은 그의 인격을 보충,강화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살아 있는 증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윽고 예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하는 충동을 강하게 느끼게 되자 여러가지 동기가 덧붙여졌다.

 

예를 들면 돌연히 세상에 종말이 오리라는 기대는 감퇴되었고 해가 지나감에 따라 예수를 알았고 그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죽어 세상을 떠남에 따라 구전과 단편적 기록 문서에 계속 의존하는 것이 극히 불확실하여 위험하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전도자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들을 위해서 예수의 이야기를 남겨두어야겠다는 소명감을 느꼈다. 더구나 이교에서 개심한 수많은 젊은 이들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스도 이후 세대에 태어나 교려할 들어온 젊은이들이 성만찬의 의미와 그 기원을 알고 싶어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은 예수께서 배신당하시던 밤에 다락방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대한 믿을만한 기록은 그들 손에 쥐어주는 일이었다. 이외에도 이단들의 위험도 있었다.이자들과도 싸워야 했던 것이다.

교회 안에 믿음 문제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해지자 이런 문제가 불가피하게 일어났다. 즉 예수는 실로 이것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주님은 무엇을 가르치셨는가? 그리고 교회가 외부로부터와 교인들 중 성격과 행동과 동기가 거짓되고 해로운 대표자들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때 세상의 눈 앞에 교회를 창설한 주님의 이야기,그들이 섬기기로 서약한 주님의 이야기를 치켜들어보이는 일 이상으로 더 좋은 변증이 있었겠는가?> 이 여러가지 방침을 따라 주님의 귀중한 이야기를 뚜렷하고 영구적인 형태로 보존할 필요가 점차 느껴졌음으로 전도자들은 이 일에 착수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