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 이야기 - 마경덕
그 모피공장엔 짐승들이 우글거렸네
사람인척 하는 짐승 같은 사람과
짐승처럼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들과
죽은 짐승들의 눈(眼)이 쌓인 모피창고가 있었네.
숨쉬기조차 힘들게 날아오르는 짐승의 털도
가난을 밀어내지 못하고
배고픈 짐승들, 배부른 짐승의
하룻밤 술값 정도에 금새 길들여졌네.
숱한 밤이 뜬눈으로 들들들, 미싱에 박혀죽고
먼지 쌓인 바닥에서 죽은 짐승들의 물 먹인 껍데기는
고무줄처럼 팽팽히 당겨졌네.
여우 한 마리 팔딱, 재주 넘어 열 마리 여우로 둔갑했네.
수입산 백여우 뱃가죽을 칼로 찢으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짐승들,
늘어난 가죽에 빗질을 하며
눈부신 빛을 달고 달았네.
죽어서 더 빛이 나는 껍데기에 밤새 날개를 달았네.
그저 일밖에 모르는 미련한 짐승들,
백여우의 탐스러운 꼬리에 손 베이는 줄 몰랐네.
수없이 죽어간 짐승들의 슬픈 눈에
그 해 여름, 펄펄 눈이 내리고.
|
'━━ 감성을 위한 ━━ > 영상시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매는 잉거스의 노래 - 예이츠 (0) | 2006.01.28 |
---|---|
설날 - 권영우 (0) | 2006.01.27 |
세상 읽기 - 천 양희 (0) | 2006.01.25 |
추운 것들과 함께 - 이기철 (0) | 2006.01.24 |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 홍사용 (0) | 200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