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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여인네들이 떠는 수다 - 김진악

Joyfule 2008. 4. 10. 01:18

찜질방 여인네들이 떠는 수다  - 김진악  
어느 찜질방에나 늘상 부인네들이 삼삼오오 떼 지어 앉아서 이야기꽃이 만발하다. 
몸을 풀고 미역국도 마시고 달걀도 먹었으니 혓바닥이 놀고 있을 리가 없다. 
세계평화와 인류공영共榮을 논하는가? 턱도 없는 망발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남북통일을 두고 격론을 벌이는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그 여인네들의 첫마디는 대개 오르내리는 아파트 시세다. 
아들놈 과외비 걱정, 바깥양반 타박하다가 시부모 흉보기를 마치면 더할 얘기가 없고 썰렁해진다. 
그러면 바야흐로 얘기의 본론이 벌어진다. 
여인네들이 희희덕거리는 말 잔치에 열의 아홉은 남정네와 여인네가 연출하는 육두잡설肉頭雜說이다. 
세상에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또 들어도 재미있는 얘기는 육담肉談이오 음담淫談이다. 
아무리 지독한 음담패설淫談悖說을 늘어놓아도 파출소에 끌려가지 않는다.
입담 좋은 여인네들이 쏟아놓는 우스갯소리를 여기 기록으로 남겨서 영구 보존할까 한다. 
그리 야하지 않은 농담으로부터 썩 노골적인 얘기로 강도를 높여가는 것이 순리라 하겠다.
칠십 노인이 이십대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식장에 온 친구들이 노신랑에게 물었다.
“자네는 재주도 좋군. 아무리 갑부라지만 저리도 고운 여인한테 장가를 가다니! 대체 그 비결이 뭔가?” 
그러자 신랑이 귓속말로 말하였다.
“난 저 애더러 아흔 살이라고 했지. 그랬더니 일이 수월하게 풀리더라고.”
인생황혼에 이르러 목숨이 서산마루에 걸려있을 때,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한 10억에 돈이 있고 굴레방다리 곁에 금싸라기 땅 덩이가 있다. 
이 돈을 아들 딸 싸우지 않게 고루 나눠주려고 고심하는 노친네가 있다. 
살아생전에 피 붙이만 위해 살았으니 남은 거금을 고아원에 희사하는 노인도 있다. 
가족들과 상의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다음날 아침 조간신문의 모서리를 차지한다. 
어떤 늙은이는 남은 재산을 탈탈 털어서 참한 여인을 새로 얻어서 깨가 쏟아지게 살다가 요단강을 건넌다. 
이 노인네들에게 돌을 던질 자가 있겠는가.
 “저마다의 소질을 발휘하여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자”는데 잔말이 있을 수 없다. 
여기 새 장가가는 칠십 노인은 재물이 있고 사는 지혜도 남다르다. 
대개는 나이를 줄여서 여인에게 청혼을 하는데, 이 노인은 스무 살을 늘려서 청혼을 하고 성공한다. 
한 두 해 살면 늙은 영감이 저 세상에 가고, 
아파트라도 한 채 굴러 들어오리라고 생각하는 젊은 부인이 우리를 웃긴다. 
칠십 노인이 첫 날 밤을 어찌 치렀을까. 이런 우스개가 있다. 
여든이 훨씬 넘은 노인장이 열여덟 살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첫날밤 노인이 어린 신부에게 물었다. 
“아가야 첫날밤에 뭘 하는 건지 아니?”
“몰라요.”
“엄마가 어떻게 하라고 일러 주지 않던?”
“아뇨.”
노인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거 큰일 났네. 나도 다 까먹었는데...”
신방新房 초야初夜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가 벌어지는 밤이다. 
어린신부는 송이버섯을 본적이 없고 늙은 신랑은 벌어진 밤송이를 본 기억을 잊었다. 
이 팔십 노인은 나이를 속이고 결혼한 후배를 찾아가서 배워야 하겠다. 
그 노인이나 이 노인이나 노욕老慾 노탐老貪 노망老忘의 주책바가지들이다.
두 노인의 마지막 말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기상천와한 반전은 웃음의 중요한 요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앞의 두 얘기는 우리 얘기가 아니다. 서양 사람의 농담이다. 
거리의 간판은 외국어 투성이다. 우리말로 상품이름을 지었다간 회사가 망한다. 
티브이 화면에서는 영어가 활개를 치고 있다. 
마침내 미국 사람의 해학을 우리 익살인 줄 알고 있다.
 새 정부에 영어 정책이 성공하면 손자와 할머니가 미국의 우스갯 얘기로 농담을 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익살은 서양의 익살과 좀 다르다. 
한국 여인네의 사랑방인 미장원이나 계모임 자리나 찜질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우스개가 있다. 
신토불이 토종 익살인 얄미운 년 주워섬기기이다. 
10대 : 얼굴도 예쁜데 몸매도 쭈쭈 빵빵 잘 빠진 년 
20대 : 연애 박사질만 하고 돌아다니더니 시집은 잘도 가는 년
30대 : 잘 생기고 돈 잘 버는데도 공처가인 남편을 거느리는 년 
40대 : 할 짓 다하고 돌아다녀도 일류대학 척척 들어가는 자식 둔 년
50대 : 남편도 아직 직장 다니는데 돈 벌어다 주는 자식 둔 년 
60대 : 수십억 유산 남겨 주고 저세상 가버린 남편 둔 년(부와 자유가 생겼으니)
70대 : 자식한테 손 안 벌려도 통장으로 매달 돈 들어와 풍족하게 쓰는 년 
80대 : 인생 엉망으로 살다가 죽어서 천당 가려고 교회 다니는 년 
이중에 하나도 해당 안 되면 쪽박 찬 년, 
두 가지 이상 해당되면 복 받은 년, 
네 가지 이상 해당되면 복도 많은 년, 
여섯 가지 이상 해당되면 복 터진 년, 
전부 다 해당되면 괘씸한 년이다. 
이런 주워섬기기는 쪽박 찬 여인의 독설이다. 
복이 너무 많아 괘씸한 여자는 이런 얘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20세기 전후 한국여성사의 일면을 보여 주는듯하다. 
예쁜 몸매 가꾸기, 자유분방한 남녀관계, 황금만능의 병폐, 
죽어서까지 행복을 누리고자하는 속물들을 비꼬고 있다. 
비웃음의 대상은 울화통이 터지고 비웃는 자는 가슴이 후련하다. 
이 세대별 년 타령은 누리는 자 쓴 웃음을 웃게 하고 못 누리는 자 통쾌한 웃음을 짓게 하는 풍자골계다. 
여성이 여성 자신을 비꼬는 우스개가 많다. ‘여성 평준화 타령’도 그 하나다. 
40 대 :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나(어디다 이력서 넣을 일 없으니까)
50 대 : 얼굴 성형 한 년이나 안 한 년이나(주름살 생기니 거기서 거기니까)
60 대 : 자식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하나 둘 결혼하면 나가 버리니까)
70 대 : 영감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어차피 밤일 못하긴 마찬가지니까)
80 대 : 돈 있는 년이나 없는 년이나(돈이 있어봤자 멋 내고 갈 데도 없으니까)
90 대 : 살아있는 년이나 죽은 년이나(살아 있은들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으니까) 
이 평준화 재담도 못 배운 여인, 
얼굴 뜯어 고칠 형편이 안 되는 여인, 
영감이 없는 여인, 
돈 없는 여인, 
이미 죽은 여인이 만든 익살이다. 
나이가 들었다 하더라도 이왕이면 배움이 있고 예쁘고 영감이 있고 돈이 있고 오래 살면 여생이 행복하다. 
오뉴월의 서릿발 같은 여인의 시기, 질투, 저주의 발산이 이렇게 흠뻑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제 얼굴에 침 뱉듯이 여인네들이 여인네를 두고 익살을 부리는데, 
하물며 남정네들이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남정네를 희롱하는 우스개는 한도 끝도 없고 말의 성폭력에 가깝다. 
20대의 남성부터 90대의 남성까지 성 능력을 평가하는
 ‘남성과 불의 상관관계론’은 실로 기상천외하고 해괴망측하다. 
20 대 : 번갯불이라 (무섭도록 세지만 너무나 빠르구나)
30 대 : 장작불이라 (한 번 붙었다 하면 활활 타는구나)
40 대 : 모닥불이라 (그럭저럭 화기가 있고 오래가는구나)
50 대 : 화롯불이라( 뒤적거려보면 온기가 있구나)
60 대 : 담뱃불이라 (불은 불인데 별로 쓸모가 없구나) 
70 대 : 반딧불이라 (불도 아닌 것이 불인 척 하는구나) 
80 대 : 도깨비불이라 (본인은 불이라 우기지만 봤다는 사람이 없구나) 
남성에 성 능력을 불에 비유한다. 착상이 기발하고 정설定設은 기지가 넘친다. 
이 우스갯소리를 창안한 여인은 한국 성 문학의 대가 마광수 교수보다 낫고 
이 여인 앞에서는 세계적인 성 연구가 킨제이 박사도 두 손을 들 것이다, 
반딧불이나 도깨비불을 피우는 남정네들도 웃음을 터트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옛날이나 이제나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육담골계肉談滑稽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동서고금의 익살스런 얘기의 십의 팔십은 남녀의 색담色談이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웃음에 세계는 무미건조해졌을 것이다. 
한국여성은 한국의 웃음을 풍부하게 한 공로자이다. 
찜질방에서 미장원에서 친목모임에서 여성들의 왕성한 수다가 우리들에게 큰 웃음을 제공한다. 
<고금소총古今笑叢>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소화집笑話集이다. 
선비가 아니고 유학자도 아닌 여성들이 현대판 <고금소총>을 만들고 있다. 
격려하고 박수를 보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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