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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 내리고 - 나희덕

Joyfule 2007. 3. 30. 04:49

 
      찬비 내리고 - 편지 1 -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 편지 2 - 나희덕 세상이 나를 잊었는가 싶을 때 날아오는 제비 한 마리 있습니다. 이젠 잊혀져도 그만이다 싶을 때 갑자기 날아온 새는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갑니다. 그러면 다시 세상 속에 살고 싶어져 모서리가 닳도록 읽고 또 읽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지요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당신에게도 쉽게 해 지는 날 없었다는 것을 그런 날 불렀을 노랫소리를
      젖지 않는 마음 - 편지 3 - 나희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