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생달 꽃밭 - 구 상
초생달 꽃밭에는 옛 얼굴들이 산다.
봉선화 꽃술에서 내민 얼굴은
혼례(婚禮)를 치른 지 사흘 만에
북간도(北間島)로 떠나던 외사촌 누나,
색(色)골무타래를 쥐어주고선
목쉰 기적(汽笛)과 함께 떠나간 누나,
다홍으로 얼룩진 50년 전 그 얼굴이
소롯이 내다보고 있다.
코스모스에선 교리반(敎理班) 수녀의 얼굴!
아그네스이던가 루시아던가
검은 고깔에 흰 수건으로 감싼 보얀 얼굴에
푸른 눈을 반짝이던
죄그만 내 가슴의 그리움이던
하늘하늘 키가 큰 서양수녀(西洋修女)가
빙그레 내다보고 있다.
국화(菊花)에서 내다보는
얼굴은 그 누구일까?
이북(以北), 산소(山所)도 알 길 없는
어머님 시신(屍身)의 얼굴 같기도 하고
거기 두고 온 처제(妻弟)의
상냥한 얼굴 같기도 하고
어쩌면 며느리 될 애의 얼굴 같기도 한데
초생달이 먹구름 뒤로 숨자
이제 꽃밭은 현기(眩氣) 같기도 하고
무서움 같기도 하여
으스스 한기(寒氣)가 든다.
원, 몸살이 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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