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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물산장려운동 전개한 장로

Joyfule 2009. 4. 8. 00:30

최병호 물산장려운동 전개한 장로

1873-1950 장로교 장로, 매서인
물산장려운동 전개, 전남 강진 출생

1. 방탕한 생활을 하다 태풍 속에서 회개하고 기독교에 입교

최병호 장로는 1873년 전남 강진에서 전주 최씨 최정흠의 5남매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주위의 기대와 달리 주색잡기로 세월을 허송하며 속을 썩혔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는 그를 1900년 외딴 섬인 완도군 금면도라는 곳의 최간난이라는 처녀와 결혼시켜 가정을 꾸며 주었다. 그런데 가정을 꾸리면 어느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부랑아적 기질은 여전했다. 그는 부인을 섬에 홀로 두고 재산을 모두 챙겨 육지에 나와 술과 도박 등으로 탕진했다.

 

이런 생활을 5년여 동안 하다 1905년 그는 먼 친척이 예수를 전도받았다. 그리고 그후 또 어느 전도인을 통해 전도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그는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강전에서 완도를 가기 위해 배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태풍을 만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죽음을 예감하고 무엇인가에 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전도받은 말씀을 생각하고 "꼭 믿겠습니다.지난 죄를 다 용서하시고 살려주세요. 하나님!"하고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완도의 관산도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거의 초죽음이 된 상태였다.

 

그는 즉시 교회를 가서 배에서 드린 기도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며 회개의 기도를 다시 드렸다.집에 돌아와 부인에게도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하자 부인은 두번이나 가산을 탕진한 남편의 말을 선뜻 믿으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그날부터 죽을 때까지 식을 줄 모르는 신앙으로 평생을 일관했다.

2. 교회 설립에 열성을 다했으며 양동교회 장로로 장립

그후 그는 한동안 선교사 맹현리의 매서인이 되어 강진,영암,해남 등지를 다니면서 매서활동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병재라는 고개를 넘다 도둑을 만났는데 목숨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되려 복음을 전한 일은 유명하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온민족은 절망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졌다. 이에 그는 민족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신앙철학을 가지고 교회 건립에 열성을 다했다.

 

한편 1922년 '조선물산장려운동'이 목포지역 책임자가 되어 '물산장려가'를 보급하는데 힘썼고 정명여학교 학생을 선발하여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이와 더불어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열성을 다하여 양동교회 장로로 장립되었다.

1938년 전남노회는 일제의 강요에 무릅을 꿇고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이로써 양동교회에 더있을 이유를 잃어버림은 물론 신절을 꺾고 변질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게 났다는 결심으로 모든 사업을 철수하고 고향인 완도로 낙향했다. 고향에서도 그는 신앙의 자유와 민족의 해방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쉬지 않았다.

3.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순교.

1945년 3월 15일 민족해방의 소식은 완도군 관산도에도 전해졌다. 그는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다 기도를 하다가 찬송을 하며 감격의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이런 그의 기쁨은 잠시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침략해온 공산군은 서울을 점령하고 파죽시세로 대전,광주, 목포까지 밀고 내려왔다. 7월 31일 공산군은 드디어 완도를 점령한 공산군 먼저 우익계 인사들을 체포 구금하고 고문했다. 여기에 최병호 장로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는 평생을 애국운동에 몸바쳐 일했고 더구나 기독교인에다가 많은 교회를 세우고 신앙적 애국정신으로 계도하던 최장로는 공산군의 시각에서 보면 소위 악질 반동분자이다.

 

어느날 최장로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집 대문앞에 총을 맨 수명의 공산군들이 그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최장로가 오자 그들은 최장로를 인민군 사무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 미제의 스파이요 악질반동자라고 하면서 여러 명이서 무차별하게 몽둥이로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77살의 노인에게 그것은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최병호 장로는 쓰러져 숨을 거두면서 "하나님 저에게 스데반의 반열에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일제 신사참배 때 순교하지 못하고 낙향한 것을 용소하소서"라고 기도하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시종 웃는 얼굴로 스데반의 모습과 같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