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인가, 사람의 생각인가?
성경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끝장까지 놀라운 기적과 이적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어제나 오늘도 동일하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성경속의 기적들을 실제의 삶에서 경험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주변의 수많은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을 보면서, 자신의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의 실체를 안심하고 위로를 받고 살아가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대로라면, 이 땅을 떠나면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의 삶이 보장되어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 사람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금송아지 하나님을 만들어 숭배하는 탓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네 교회의 신앙의 실제가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생각에 불과한지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1~26)
위의 이야기는 기이하고 불길하다. 예수님 앞에서 수제자 베드로를 농락하고 있는 사탄의 전횡을 기이하게 그려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지만, 베드로의 귀에는 스승이 죽는다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가족과 직업을 버리고 오로지 스승에 인생을 건 베드로에게, 스승이 죽는 사건은 청천벽력같이 들렸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3년을 따라다녔던 자신의 인생이 뭐가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두려움과 불안이 덮쳐오자 그는 스승을 옷자락을 붙들고 그럴 수 없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다. 그러나 스승은 그런 베드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사탄을 향해 일갈을 하고 계시다. 당장 베드로에게서 떠나라고 말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스승의 행동에 뜨악해 하였지만, 도대체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조차 알 수 없었던 사탄의 공격을 교묘하고 신속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눈에는 사탄이 보였다는 말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육안으로 사탄을 알아챈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말을 통해 사탄의 정체를 밝혀내고 있다. 그 중요한 단서는 하나님의 뜻인가, 사람의 생각인가 하는 것이다. 사탄이나 귀신은 영혼불멸의 존재라면, 예수님 당시에 우글우글 했던 악한 영들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 허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놈들을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그들의 정체와 공격을 알 수 있는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도자들에게 미혹의 영이 머리를 타고앉아 자신들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이고 있고, 대부분의 우리네 교인들이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늘은 미혹의 영이, 어떻게 우리네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을 속이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1. 축복
전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사는 축복을 꿈꾸며 예수를 믿기를 작정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축복은 무엇인가? 교인들이 알고 있는 그런 세속적인 축복인가? 성경적인 축복관을 말해주는 내용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산상수훈이라고 이름 붙여진 팔복의 설교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8가지 축복에서는 교인들이 얻어 누리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며 건강한 축복의 내용은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물론 교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신28장의 나들복처럼 이 땅에서 잘 되는 세속적인 축복의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축복은 우선순위가 아니라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는 백성에게 보너스로 주어지는 축복에 불과하다. 결국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고 주일성수를 하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자동적이기에, 사람들은 세속적인 축복을 얻으려고 교회마당을 밟고 있다. 성경은 영혼이 잘 되는 자들만이 세상에서 잘되고 건강한 세속적이 축복이 주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영혼의 축복이 아니라 세상에서 얻어 주리는 세속적인 축복에 빠져서 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러한 축복관은 사람들이 생각일 뿐이다.
2. 믿음
믿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을 토대로 천국을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 확신의 믿음은 시작에 불과하지, 보장되는 믿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적인 믿음은 사랑이나 지혜, 지식 각종 성령의 은사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믿음은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을 동반한다. 그래서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기적을 일으키며, “네 믿음이 크도다, 혹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며, 예수님이인정해주시는 믿음은 기적과 응답이 쏜살처럼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확신의 믿음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자기암시나 자기 확신의 믿음을 가지고 천국을 기정사실화하며 기도응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 확신의 믿음은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의 뜻은 기적을 동반하는 믿음의 능력을 드러내야 한다.
3. 구원
당신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연히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근거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근거는 육체의 사람에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성령의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바람처럼 자신의 계획이나 뜻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성령의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가 풍성하게 맺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경의 이런 저런 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1분짜리 영접기도와 성경에도 없는 주일성수를 하면 구원을 기정사실화 하여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복종하는 태도가 절대적이고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신학자들이 성경을 비틀어서 주장하는 싸구려 구원론이 대세이다. 성경에는 천국을 얻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이며, 죄를 회개하며 죄와 죄를 부추기는 악한 영과 피터지게 싸워 이기는 사람이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본적인 구원관이 이미 교회를 자리 잡고 있는지 오래되었으며, 필자처럼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는 기적과 이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성령의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면 도끼눈을 뜨고 혹세무민하는 이단의 괴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4. 예배
우리네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종교의식이 예배이다. 그리고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는 말을 지어내서 퍼뜨리고 있다. 예배에 성공한다는 의미는 교회에서 시행하는 각종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는 우리네 교회에서 생산하고 유통하는 예배와는 사뭇 다르다. 예배는 (하나님께)절하다 라는 뜻으로, 제사라는 의미인 헬라어 ‘라트레이야’를 예배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는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1시간짜리 예배의식을 만들어서 예배로 대치하여 사용하고 있다. 교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이 진정한 예배가 되려면, 평소에 예배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종교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둔갑해서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하나님의 뜻이 실종된 채 사람의 생각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다.
5. 헌금
헌금은 우리네 교회지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직분이 주어지지 않으며, 이런 저런 명목의 헌금봉투가 예배당 뒤에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드리는 부자교인들이 교회의 주요한 직책을 차지하고 담임목사의 예쁨을 받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을 과도하게 드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30배, 60배, 100배로 뻥튀기가 되어 되돌아온다는 기이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인가? 성경은 사람을 포함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죄다 하나님의 소유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재물 역시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백성들이 드리는 헌금의 태도와 속내를 통해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지의 척도를 재고 계시다. 십일조 헌금은 필수적이며, 성경에서 요구하는 헌금은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은밀하게 드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헌금을 드리는 목적이 세속적인 축복을 바라는 희생적인 행위이거나, 목회자나 다른 교인들이 자신의 종교적인 열정을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드린다면 하나님 앞에 가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목회자들은 많은 헌금을 거두려는 각종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이 횡행하고 있으며, 순진하고 열정적인 교인들은 지갑과 재산을 탈탈 털리며 악성부채를 떠안고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상은 맘몬의 신을 섬기는 일이 우리네 교회에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슬프고 답답한 일이다.
6. 전도
전도는 헌금과 더불어 목회자가 가장 관심을 갖는 대상이다. 어느 교회에서도 틈만 나면 교인들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도해서 교회의자에 앉혀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화를 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닦달을 하는 담임목사의 속내를 아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필자 역시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속내는 중견교회나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목회성공을 이루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한다. 물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목회자는 한명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들이 영혼을 사랑하며 구원하는 목적으로 전도를 강조한다면, 이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들은 성령의 사람으로 만들고 예수님이 바라시는 제자로 양육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예배에 성실하게 출석하여 목회자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물론 교인의 수가 늘어나서 천국에 가는 영혼들이 많아지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 다닌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교인수를 늘리는 교회는 담임목사의 탐욕을 채우는 고객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대다수의 우리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전도를 외치지만, 실상은 목회자 개인의 생각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을 뿐이다.
7. 기도
기도란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하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기도가 부자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기도응답이 없자 너도나도 희생의 강도를 높여서 하나님의 목을 조르고 있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집보다 교회에서, 특히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 모여 기도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나 각종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성경적인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이다. 그런데 목회자나 다른 교인들의 눈도장을 찍는 기도행위는 가증할 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기도의 모습뿐만 아니라 기도의 내용도 중요하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목회성공을 바라는 담임목사의 기원이 담긴 내용이나,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해지는 세속적인 목록을 나열하며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기도는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로 채워야 하며, 죄의 회개와 감사, 찬양,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내용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로 전락된 우리네 교회의 모습과 내용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바리새인인의 기도와 다르지 않다. 기가 막힌 일이다.
8. 인생의 목적
당신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대다수의 크리스천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접대용 멘트를 잊지 않겠지만, 말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속내일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받기 위해 지으신 피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기에, 예수님을 부를 때 주님(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과연 주인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는 목적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 땅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살고 싶어서이다. 말하자면 자신이 왕이 되어 이 땅에서 럭셔리하고 폼 나게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힘을 빌어서 그 꿈을 이루고 싶다. 말하자면 자신이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삶을 부추기며 성공적인 인생을 말하는 곳이 교회라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거꾸로 성경에서 말하는 인생은 우리가 죽는 것이며, 날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목적을 못 박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사람의 생각이 지배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은 예배당의 장식물로 전락한 십자가처럼 성경에 박제가 되어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집단인 교회가, 어떻게 해서 인본적인 목적과 세속적인 욕심을 이루는 탐욕적인 종교집단으로 변모했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그 이유는 미혹의 영이 우리네 교회지도자들의 머리를 타고앉아 자신들의 생각을 넣어주어 조종하고 있으며, 이들의 가르침을 받는 교인들은 분별력을 상실한 채 미혹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증거나 하나님이 우리네 교회를 떠나셔서 성령의 능력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세상 사람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다. 또한 우리네 교인 역시 무능하고 무기력한 믿음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는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을 분별하지 못한 채, 미혹의 영에 속아서 지배당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들의 영혼의 앞날은 불 보듯 환하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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