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아지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
엊그제 소모임에 젊은 형제가 왔었다. 그 형제는 필자를 안지 4년이 넘었으며, 필자의 전화번호도 입력해 놓았다면서 어렵사리 찾아왔다는 말을 꺼냈다. 그 형제의 집안은 필자가 말하는 명문가문(?)이었다. 말하자면 귀신에게 온 가족들이 눌려있는 가정이라는 뜻이다. 자신도 대학시절부터 우상숭배를 하였으며 가족들이 불행한 사건사고를 수도 없이 겪었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필자는 기도훈련을 해서 귀신들을 죄다 쫒아내야 할 거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그 형제는 한 달에 한번 소모임에 오면 되겠다고 되물었다. 그래서 아마 충주에 열심히 와서 기도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두운 얼굴이 되어 되돌아갔다.
여기까지 필자의 얘기를 들으면, 교인들을 끌어 모아 교세를 확장하려는 교회의 상투적인 수법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울 영성학교는 주말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찬지 오래이다. 그래서 올 해 부터는 새로운 훈련생을 극도로 자제하고, 공동체 식구들의 내공을 쌓아 정예용사가 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영성학교의 훈련은 일대일 코칭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이 많아지면 훈련의 질과 양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형제에게 영성학교에 다니면서 훈련을 하라고 권면한 까닭은, 지금까지 수백 명을 훈련한 데이터를 가지고 가장 좋은 훈련방식을 말해주었던 것이다. 훈련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졸업을 했어도 영성학교에 자주 오지 않고 스스로 기도훈련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내공이 쌓여서 정예용사에 근접했거나, 기도의 강을 건너 정예용사가 된 사람은 아직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사실 영성학교에 매주 와서 훈련을 받는 공동체 식구들조차 정예용사가 되는 일은 실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영성학교가 이미 포화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영성학교에 오가면서 훈련을 해야 한다고 권면한 이유이다. 아무튼 이 형제가 기도훈련을 할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필자의 권면을 받아들일 확률은 별로 없다. 왜냐면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고 힘들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형제를 포함해서 가족들이 성령이 만져주시지 않는다면 앞으로 고통스런 불행이 이어질 것은 불 보듯 환하다. 이 형제도 그 간의 경험으로 보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의 불행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더라도, 이에 순종하지 않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이 형제의 생각이 바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생각임을 속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충32:1~6)
위의 내용은 모세가 시내산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목격하고 홍해가 갈라지며, 매일처럼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스스로 우상을 만들어서 그게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하고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게 기이하지 않은가?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수도 없이 체험하면서 믿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자신들의 방식대로 섬기고 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기적을 수도 없이 경험하였지만, 결국 대부분 불순종과 반항의 영에 속아서 불평과 원망을 일삼자가 지옥의 불에 던져진 게 기이하기만 하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실제를 수도 없이 보고 듣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지옥의 불에 들어가게 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미혹의 영이 그들의 머리를 타고앉아 자신들의 생각을 넣어주어 속였지만, 그 생각이 자신들의 생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19:20~22)
또 다시 위의 부자청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부자청년은 영생에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모세의 율법을 잘 지켰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는 권면에, 슬픈 얼굴로 머리를 흔들고 돌아가 버리고 있다. 그 부자청년은 자신이 생각하는 영생의 방법이라면 순종하겠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지금까지 율법을 준행하고 지켰던 것은 오로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이상을 요구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각은 누구의 생각일까? 자신이 생각이라고 믿었겠지만, 이 역시 미혹의 영이 속아서 넣어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우리네 크리스천들은 성경에서 명령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지 않는다. 그리고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주일성수와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교회에서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종교의식과 인본적인 종교행위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여야 천국에 들어가며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핵심이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도 기도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허다하다. 이는 자신들이 만든 금송아지 하나님을 숭배하며 경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자신들이 할 만한 종교의식이나 신앙행위를 하는 것이 바로 금송아지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천국에서 얼굴을 볼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각종 종교행위를 하며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실상은 미혹의 영에 속아 넘어가서 하나님의 뜻에 목숨을 걸고 순종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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