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생각은 당신의 생각과 다르다.
필자가 외국에서 기도코칭을 하는 목회자 사모가 있다. 그분의 인생과 사역은, 그야말로 고단하고 힘든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젊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이 가시기 전에, 잘사는 나라에서 남편을 청빙한 이민교회의 담임목사의 말은, 나중에 그곳에 가서 실상을 알고 보니 거짓말투성이였다. 너무 황당하고 민망해서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이다. 결국 이역만리에서 개척하다시피 고생해서 지금은 교회를 번듯하게 세웠지만, 호사다마라고 덜컥 남편이 암에 걸렸다. 힘겨운 항암치료 끝에 암은 완치판정을 받았지만, 항암의 부작용으로 씹는 능력을 상실했으며 침이 나오지 않는 부작용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이 사모는 매일처럼 음식을 갈아서 유동식을 준비해야 한다. 남편이 병석에서 목회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들 곁을 떠났다. 이제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에, 평생의 목회사역과 인생의 성적표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가 어찌해서 필자의 칼럼을 보게 되어 기도코칭을 하게 되었다. 기가 막히게도, 사모에게서 귀신의 증상이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와중에도 기도훈련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그러나 문제는 더 이상 기도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기도훈련을 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하다. 약한 귀신과 중급귀신들의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동안 해온 종교의식과 신앙행위는 물론, 그동안 교제해왔던 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교제의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 싸들고 한국으로 건너와서 영성학교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으라고 하고 있지만 병든 남편 때문에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평생 사역을 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그들 부부의 인생과 사역을 돌보지 않는 것일까? 기가 막히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8,9)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다르며,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동일하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위의 목회자부부를 보라. 그들처럼 평생 하나님께 헌신한 이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하나님은 그들의 인생과 사역을 외면하시고 돌보지 않으시는 것인가? 왜 그런지 아는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요구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로 사역을 하고 있다면 이보다 더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왜 신학교를 나와서 개척한 젊은 목회자들은 대부분 교회 문을 닫고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현실에 대해, 누가 시원하게 설명 좀 해주라. 그동안 교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해왔던, 믿음이 부족해서나 때가 되지 않아서 그랬다는 답변이 궁색하지 않는가?
그래서 필자가 속이 시원하게 말씀드리겠다. 우리네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은 본질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신앙생활이라고? 그렇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본질적인 믿음을 추구하지도 집중하지 않으며, 교회에서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예배의식이나 종교행위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찾고 계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본질적인 신앙이란 무엇인가? 종이 주인의 말을 듣는 것이며,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당신이 종이라면 항상 주인의 곁에 붙어있어서, 부르는 즉시 달려가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무엇인가? 바로 주인을 찾아오는 행위이다. 그게 본질적인 신앙행위이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1~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42;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행한 믿음의 행위가 무엇인가? 그는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그분을 사모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윗도 하나님을 사모하여서 영혼이 쇠약해질 정도이며, 목이 타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같이 하나님을 사모하며 찾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형식적인 종교행사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며, 하루 종일 육체가 원하는 생각과 삶의 즐거움을 좇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는 정작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을 만날 생각도 찾을 생각도 없다.
목회자들도 무거운 사역의 짐을 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사모하며 만날 생각이 없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며 헌신하며 봉사한다고 여기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기뻐하지도 교제하려고 하지 않는 현실이 기이하고 괴이한 일이다. 그래서 필자가 훈련생에게,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라고 다그치면 너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미혹의 영이 하나님을 만나는 본질적인 믿음의 행위를 교묘하게 속이고, 딴 데로 생각과 관심을 돌리게 하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을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목회자조차도,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돌보지 않는 기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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