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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외면한다고, 현실이 달라지겠는가?

Joyfule 2019. 12. 7. 14:36



 
    현실을 외면한다고, 현실이 달라지겠는가?



오랫동안 PC방에서 먹고 자면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 게임마니아가 있다. 그는 자신의 게임 사이트에서는 거의 황제의 수준이다. 그동안 밤낮없이 이루어놓은 작업의 결과이다. 그래서 사이트에서 수많은 전투를 벌여서 많은 전리품들을 획득하였으며 거대한 영토를 확장해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게임 사이트에 있으면 너무도 행복하다. 그러나 사이트에서 나오면 컵라면을 사먹을 돈도 없는 불쌍하고 비참한 PC방폐인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사이트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는가? 그가 게임 사이트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컵라면조차 사먹을 돈이 없는 불쌍하고 비참한 게임속의 황제일 뿐이다. 그래서 배가 고파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 일이 우리네 교회에도 만연하다.

 

영성학교에는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온다. 목회자에서부터 평신도까지 교회내의 직분은 다양하며, 연령층도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부터 팔십 중반의 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단 한가지이다. 건조한 영혼과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이다. 필자가 인터넷 칼럼과 유투브 동영상에, 어떤 문제라도 하나님께서는 해결할 수 있다면서 영성학교에 찾아오라고 큰소리를 탕탕 쳤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한 문제는 수도 없이 많다. 많은 이들이 정신질환과 고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고, 귀신들린 현상으로 지옥같이 살고 있었으며, 배우자와 가족 간의 불화, 사업과 투자의 실패로 인한 재정적인 궁핍, 자녀의 문제 등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무런 삶의 문제가 없어도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과 마음으로 우울하게 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에게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면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지 않다. 지금까지 수많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수도 없이 해온 희생적인 신앙행위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 같은 필자의 말투에 거스름이 올라오고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특히 목회자나 선교사의 경우에는 드러내놓고 필자에게 대들며 따졌다. 아니, 평생 하나님의 사역에 인생을 바쳤으며, 그동안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경험한 것도 적지 않았는데, 자신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니 기가 막혀 하였다. 물론 그들이 과거에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하였는지 필자는 모른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현재 성령이 없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필자의 말을 듣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흔들더니 먼지를 털면서 휑하니 돌아갔다.

 

아니, 그들에게 성령이 계신다면 왜 이런 고통스럽고 어려운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자신 안에 있는데, 왜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야 하는지 누가 시원하게 말 좀 해주라. 그들도 자신이 처한 암울한 상황이나 고통스러운 처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타협안을 제시한다. 성령은 계시지만, 자신의 곤혹스러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중얼거리거나, 혹자는 고난을 통해 믿음을 성장시키려고 한다고 말이다.

 

엊그제도 그런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자기 안에서 기이한 소리가 난다고 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장안에 내적치유로 유명한 손모장로도 찾아가 보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 안에 우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내안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는 필자가 신대원에서 배운 심리상담학 책이름이다. 자신 안에 어릴 적부터 잠재하고 있는 상처받은 영혼이나 쓴 뿌리가 있어서, 이를 드러내고 치유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필자는 대뜸 귀신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든 표정이 역력하게 읽힌다. 축출기도시간이 되자마자, 그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귀신이 드러내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필자가 손을 잡고 개인적으로 축출기도를 하자 더욱 괴기스럽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이렇게 괴성을 지르는 게 누구인가, 자신인가 귀신인가? 기가 막히지 않은가? 그래서 동역하는 한의사에게 진맥을 해보라니까, 입을 쩍 벌린다. 머리 쪽이나 등뼈 쪽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귀신들로 꽉 차서 뿌옇게 가려진 상태이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 축출기도를 하면서 기도훈련을 시작하면, 그 실체가 시커멓게 드러나면서 귀신들이 고통스럽게 하면서 공격을 개시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 안에 성령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바울도 사단의 가시가 있지 않느냐고 항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사탄의 질병을 허락한 것은 교만하지 말라는 뜻이었지, 귀신이 바울 안에 들어와 살고 있냐고 면박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견해에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귀신이 몸 안에 잠복했는데, 성령도 함께 있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이런 현상을 어떤 이들은 양신역사라고 말하곤 한다. 성령과 귀신이 함께 있는 현상이라고 말이다. 아니 하나님이 어떻게 귀신과 동거할 수 있는가?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 안에 성령이 있다는 것을 버리지 않으니까, 귀신이 드러나는 현상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더 이상 기도훈련을 할 생각이 없다.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이와 대동소이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성령이 계시기는 하지만 활동을 하지 않으니까 깨워야 한다거나, 성령은 계시지만 이 상황을 허락한 것이거나, 어찌 되었든지 성령이 계신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처한 차가운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아전인수식으로 비틀어서,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고정시키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이들이 자신의 착각과 과오를 깨닫게 될 때는 심판대 앞에 설 때일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고 믿었던 것들은 미혹의 영이 넣어주는 속임수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 때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고 멸시한 이들이 받을 저주와 형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성경이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