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200페소짜리 지폐에는 결곡한 얼굴의 수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고래로 탐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돈’의 모델로 무심무욕의 수도자가 ‘선발’된 것이 일견 생경하기도 한데, 이 여인은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수녀다. 종교재판이 성행하고 여성 수도자의 지적 탐구가 무시당했던 17세기, 시대의 벽을 뛰어넘어 지식을 추구하고 시를 썼던 당대의 인물이다. 그녀는 세 살 때 글을 깨쳤고, 아홉 살 무렵에는 부모에게 남장을 시켜 멕시코 대학교에 보내달라고 간청했을 만큼 향학열이 엄청났으며, 열다섯 살쯤에는 이미 각계의 학자들과 스스럼없이 문답을 나눌 정도로 박학하고 다식했다.
재색을 겸비한 그녀는 왕실의 총애를 받아 총독 부인의 시녀로 지내다, 성 예로니모 수녀원에 입회하여 수녀가 되었다. 수녀원 생활 중에도 희곡을 쓰고 작곡도 하며 당시 스페인의 ‘열 번째 뮤즈’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여자를 혐오하고 여성 수도자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새로운 대주교가 나타나면서 그녀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결국 대주교를 싫어한 한 주교의 계략에 이용돼 종교재판소에 넘겨지고 모든 활동을 금지당한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특출한 재능을 지닌 그녀였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나는 모든 여자 중에 가장 형편없는 여자”라는 문장을 참회 진술서에 써서 종교재판소에 제출한다. 그 후 전염병으로 죽어가던 동료 수녀들을 간호하다 생을 마감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남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수녀 - 신앙의 함정>을 들여다보면, 17세기의 문사였던 후아나 수녀의 삶이 ‘펜’ 때문에 남성과 기성 사회의 위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희극을 쓰던 후아나 수녀의 과감한 필체는 권위에 대한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시대는 어두웠으며, 시대의 권력을 오로지한 남자들은 졸렬했다. 그녀의 파란곡절 많은 삶은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옥타비오 파스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17세기 멕시코와 유럽 교회의 분위기, 그리고 여성 수도자의 곤고한 삶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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