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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결투, 원명 : My Darling Clementing 헨리 폰다

Joyfule 2009. 2. 2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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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 : My Darling Clementing
감독 : 존포드
주연 : 헨리 폰다, 빅터 마추어, 린다 다넬, 캐이시 도운스
장르 : 서부극

제작 : 1946년, 미국
 



전직 보안관 이었던 와이어트(헨리 폰다)...
소떼를 몰고 캘리포니아로 가던중 작은 마을 톰스턴 근처에 이른다.
그곳에서 목장주 클래톤으로 부터 소를 팔 것을 제의 받지만..
가격이 맞지 않아 거절한다.



잠시 선술집에 다녀와 보니...
소떼는 없어지고 동생은 죽어 있다.
이에 와이어트는 이 마을 보안관 직을 수락하고...
술꾼이지만..빠른 총잡이 인 의사 할리데이(빅터 마추어)와 투합하여
범인들을 응징하기로 결심한다.



의심은 가지만...증거가 없는 목장주 클래튼 부자
하나씩 하나씩 증거가 드러나면서..
마침내 격돌의 날이 찾아 온다.


 


My darling Clementine- Mitch Miller Chorus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900년대 초기에 "올드 랭 사인", "메기의 추억" 등과 같이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최초로 들어온 외국 노래였는데 이 때 가사는 양악계의 원로인 박태준 박사의 형님되는 박태현씨의 번안 가사라고도 전해진다. 삼면이 바다를 접하고 있는 우리의 정서에 맞게 가사가 바뀐 이 애조 띤 노래는 당시 나라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있던 우리 민중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기 시작했다. 1946년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원제:My darling Clementine)"에서 타이틀 곡으로 화려하게 등장한다. 헨리 폰다가 주연을 맡았고 서부역사의 전설적인 보안관인   와이어트 어프와 품위있고 우아한 아름다운 처녀 클레멘타인과의 사랑을 노래했던 작품으로 서부 개척시대 사람들의 어려움과 정의를 수호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의로운 정서를 나타낸 영화는 존 포드 감독의 후기 역작으로 오늘날까지 평가되고 있다.

 


Clementine  

깊은 계곡 광산마을 동굴집이 있었네
늙은 아빠 어여쁜 딸 사랑으로 살았네
오 내사랑 오 내사랑 귀여운 내 클레멘타인
너는 영영 가버리고 나만 홀로 남았네
이젠 다시 볼수없네 요정같던 그 모습
네가 신던 작은 신발 내 마음이 아프다
오 내사랑 오 내사랑 귀여운 내 클레멘타인
너의 모습 늘 그리며 나만 슬피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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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와이어트 어프가 클레멘타인을 두고 떠난다. 서부영화의 영원한 프레임...떠나가야 멋 있어 보이는 건 왜일까? 이때 나오는 주제곡인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의 멜로디가 매우 인상적인데,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후, 이 민요도 유명해졌다.

오래된 미국 민요로 작자가 미상이지만 1883년에 퍼시 몬트로즈가 이것을 등록한 바 있으나, 가사로 미루어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은. 1849년 골드 러시 직후가 맞을 것 같다.

 

1849년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몰려왔던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포티나이너들은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 등으로 많은 수가 목숨을 잃다.  

 

또한 자신들이 캐낸 황금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탈감에 빠져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 라는 자조섞인 노래를 부르게 된 이후 널리 퍼져나갔다.


서부개척사중 백인의 비애인 포티나이너....주제가를 들으면 혹독한 노동착취를 당하던 포티나이너들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출처 : 여기저기 짜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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