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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滅의 軍人 맥아더 將軍

Joyfule 2006. 6. 6.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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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滅의 軍人 맥아더 將軍

파이프 문  맥아더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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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Douglas MacArthur

 (1880.1.26.-1964.4.5.)

  1903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최연소 육사 교장. 최연소 참모총장등을 역임후

   1930년 대장으로 승진하였으며 1937년 퇴역하였다.

   그 후 대일관계(對日關係)가 긴박하였던 1941년 7월

    현역에 복귀하여 미국 극동군사령관으로

    필리핀에서 근무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였다.

     1942년 초 일본군의 공격으로 비율빈에서 후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

     연합군 남서태평양 방면 연합군사령관으로서

     대일작전을 지휘하였다.

      1945년 7월에는 필리핀을 완전히 탈환(奪還)하고,

 이어 8월에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UN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 전세를 역전시켜

 적을 한만국경까지 몰아내고

 한국의 적화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를 하게 되자

그는 만주폭격과 중국연안봉쇄

대만의 국부군(國府軍)의 사용 등을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트루먼 대통령과의 대립으로

1951년 4월 사령관의 지위에서 해임되었다.

귀국 후에는 레밍턴 랜드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보수파(保守派)에 속하여

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적도 있다.

 ‘노병(老兵)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연설을 들은 수천만의 미국 국민들의 가슴 속에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일화를 남긴 맥아더 장군은

1964년 4월 5일 월터리드 육군 병원에서

명예로운 일생을 마쳤다

 장군이 애용하든 군모,파이프,색안경

 

;;;;MacArthur's ribbon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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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시절의  맥아더 생도 (1903)

 육군 참모총장 시절의 (1930.11.21-1935.10.1)

 맥아더 장군

"나는돌아온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맥아더장군이

 레이테도에 상륙하는 모습(1945년)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重光 日本外相 (1945.8.23)

미주리함상에서 일본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맥아더장군 (1945.8.23)

미주리함상에서 일본항복문서에 서명후 연설하는

맥아더장군 (1945.8.23)

1945.8.30  厚木 飛行場에 도착한 맥아더장군

 일본천황과 맥아더장군 (1945. 9. 27, )

 유엔기를 수령하는 맥아더장군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된 직후 기자회견하는 맥아더장군(1950년)

맥아더 장군과 릿지웨이장군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맥아더 장군의 용단

맥아더원수가 인천상륙 작전을 계획했을 때,

미군 수뇌부는 동경회의('50년 8월 25일)에서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와

항공지원의 항속거리밖에 있다는 이유 등으로

크게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 때 맥아더 원수는

"북한군 지휘관들도 당신들과 같이 훌륭한 장군이다.

여러분이 인천상륙작전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북한군의 장군들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것이며,

따라서 인천은 방비가 소홀할 것이다.

고로 이 허점을 친다면 성공할 수 있다.

사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대승을 거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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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이승만대통령과 맥아더장군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트루만대통령괴 맥아더장군의 첫만남 (1950.10.14 웨이크 도)

평양 비행장에내린 맥아더장군과 워커장군(1950.10.20 )

 맥아더장군과 장개석총통 (1950.7)

Virginia주 Norfolk시에 있는 Macarthur Memorial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맥아더장군 동상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동상앞에서 장군의 명복을 비는 역전의 용사들 (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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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Douglas MacArthur's

"Old soldiers never die" Speech

(April 19,1951)

국회에서의 마지막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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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각하, 의장님, 그리고 고명하신 의원 여러분

  저는 깊은 겸양과 자부심을 가지고-즉 저보다 먼저

이 자리에 섰던 위대한 미국 역사의 건설자들의 궤적을

따르고자 하는 겸양과,

이 입법부의 토론장(국회의사당)이 지금까지 고안된

가장 순순한 형태로 인간의 자유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이 연단에 섰습니다.

 여기에 전 인류의 희망과 열망과 신념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는 어떤 당파적인 명붑을 옹호하고자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중략)

저는 저물어 가는 인생의 황혼기에 어떤 적의나 비통함에서가 아니라

단지 마음에 품은 한 가지 목적 곧 내 조국을 섬기고자 하는 의도에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대통령께서 대한민국에 대한 지원에 개입하려는 결정을 하기에 앞서

저와 상의하지는 않으셨지만, 그 결정은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건대

올바른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그 결정은 우리가 침략자를 격퇴시키고

그들의 군사력을 격감시킴으로써 올바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완벽했으며 우리의 목적은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때 중공군이 수적으로 우세한 지상군을 동원하여

개입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전쟁과 전혀 새로운 상황을 야기시켰습니다.

이 상황은 우리 군이 북한 침략자들에 맞서 배치되었을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외교 분야에서 군사 전략의 현실적 조정을 허용하도록

새로운 결정을 요구했습니다.

이 결정들은 조속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제 정신으로는 우리 지상군을 중국 대륙에 보내는 것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일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지만,

만약 우리의 정치적 목적이 처음의 적을 물리쳤듯이

이 새로운 적도 물리치는 것이었다면 이 새로운 상황은

전략을 과감하게 수정할 것을 긴급하게 요구했습니다.

한국의 비극은 군사적인 행동이 그 영토 한계 안으로만 제한되어 있어

우리가 구해 내려는 그 나라가 전면적인 해상 폭격과

공습의 파괴적인 영향으로 고통을 받게 되어 있고

반면에 적의 은신처는 그런 공격과 참화로부터 전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 중 한국만이 지금까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모든 것을 건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한국인의 훌륭한 용기와 불굴의 정신은 필설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노예가 되는니 차라리 죽음을 무릅쓰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Don't scuttle the Pacific." "태평양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국에서 싸우고 있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막 떠나 왔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온갖 시련을 감당했으며

저는 그들이 모든 면에서 참 훌륭하다고

기탄 없이 여러분께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호하고 이 야만적인 전쟁을 최소한의 시간 손실과

인명피해만으로 명예롭게 끝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늘어가는 유혈사태는 저에게 더없이 깊은 고통과

불안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용맹스런 병사들은 제 생각과 기도 속에

항상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저는 52년간의 군복무를 끝마치려 하고 있습니다.

세기가 바뀌기 직전에 제가 군에 입대했을 때,

그것은 소년시절의 제 모든 희망과 꿈의 실현이었습니다.

제가 웨스트포인트의 평원에서 선서한 이래 세상은 여러번 바뀌었고,

희망과 꿈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만 저는 아직도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라고

자신 있게 선포했던

그 당시 병영 최고의 애창곡들 가운데 한 곡의 후렴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의 노병처럼,

저는 이제 군인으로서의 이력을 마감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던 한사람의 노병으로서

다만 사라져 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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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후 국회를 떠나는 맥아더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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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웨스트 포인트에서의 연설문 (1962.5.12)

* 아버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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