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Leadership

21세기 리더십과 목회 패러다임

Joyfule 2020. 5. 26. 09:36

 

 

 

     21세기 리더십과 목회 패러다임 

 

 

2. 개 교회 중심적 목회

) --> 

그 동안 한국교회는 4만여 교회와 1,200만 명에 이르는 교인 수를 자랑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합하지 못함으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주 미미하였다. 덩치와 크기는 자랑할 만 하였지만, 이빨 빠진 강아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개 교회주의 현상으로 빗어진 무기력함은 사회를 변화시키기에 너무 빈약하였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사고와 분파적인 행동은 자동적으로 개 교회중심적 현상을 낳은 것이다.

) --> 

3. 거품 목회

) --> 

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5공 시절을 대표하는 세 허씨들이다. 한국교회에도 산업사회시대에 주름잡던 세 허가 있다. 3허는 헤세와 허상과 허수이다. 한국에 제일 큰 장로교회가 있고, 제일 큰 감리교회가 있고,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다고 해서 한국교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돈독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교회에 사람들의 숫자가 많으면 성공한 것처럼 허수들을 두고 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숫자로 결정하려는 사람들의 경향을 말해 준다. 또한 한국교회는 허상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기도하고 교회에 다녀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도 각 개인이 홀로 서기 신앙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신앙을 목회자에게만 의존하는 것, 또한 신앙의 허상이다.

) --> 

그리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기도모임에 빠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도 허상이다. 이것은 열심이 축복을 만들어낸다는 허상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허상들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커다란 건물을 지으면 성공한 교회처럼 허세를 부리고 있다. 진정한 목회자의 권세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영적인 파워에서 나와야 한다.

) --> 

4. 목회자 자질론

) --> 

우리 나라에 400여 개의 무인가 신학교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쏟아지는 목회자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철저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목회현장에 뛰어 들었을 때, 목회자는 당혹감, 혹은 패배감을 맛보게 된다. 목회자는 누구나 자신들에게 적합한 목회지를 선택하고 목회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는 목회자를 ''으로 평가하지 않고 ''로 평가한다.

) --> 

5. 성장주의 일변도의 목회

) --> 

그 동안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아래 빠른 성장을 보여왔다. 선교 100년만에 국민의 25%라는 경이적인 복음화를 이룩했고, 외국의 선교기관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성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놀라운 사건이다.

) -->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 동안 성장제일 주의로 치달아온 부작용이 지금은 성장의 감소추세로 돌아선 것이다. 성장일변도의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한 나머지 내실이 부족했고, 균형을 이루지 못한 기형적인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다. 성장일변도 목회를 하다 보니 건물은 커지고 높고, 시설은 첨단을 걸어만 갔으나 성도 개개인의 신앙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건물이 크고, 교회내의 교인들이 많으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큰 교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회성장에 관한 올바른 개념 정립을 기대하는 것뿐이다.

) --> 

6. ()으로 결정하는 목회

) --> 

한국교회는 새속주의에 물들어서 그런지 숫자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목회가 되었다. 교인 수가 몇 명인가가 최대의 관심사가 되었고, 교회에 얼마나 안 빠지고 다니느냐가 신앙의 척도가 되었다. 그리고 새벽기도에 얼마나 충실하게 출석하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의 기준이 되었다.

) --> 

이러한 것들은 부분적으로 수궁은 하나 역시 세속화되기 쉬운 위험한 발상이다. 외형적인 숫자로만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판단이 많은 교회의 타락을 부추겨왔다. 물론 많은 사람들 중에 질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은 인정된다. 그렇다고 양을 늘이기 위한 목회철학을 가진다면 세속화되기 쉽다. 산업사회의 전형은 외형적인 것으로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평가하려 했던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 --> 

산업사회의 구조와 틀이 왜 새 밀레니엄 시대에 문제가 되는가? 바로 사회의 형태와 구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틀을 가지고 정보사회에 맞출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산업사회의 목회구조를 가지고 정보화 사회의 목회에 대처해 나갈 수 없다. 새 시대에는 새 패러다임으로 적응해 가야한다. 그러면 미래 사회와 미래목회의 구조는 어떠한가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