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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오는 소리 - 반숙자

Joyfule 2007. 2. 16. 02:05


가슴으로 오는 소리 - 반숙자  
내 가슴에는 항상 바닷속 같은 적막이 고여 있다. 하늘하늘 풀잎이 흔들리면 바람이 거기 있는 줄 알고,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의 꽁지깃이 나풀거리면 그제사 환청같은 "깍깍" 울음소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언제인가 내게도 똑딱거리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있었다. 절묘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고운 바이올린의 섬세한 음절도 있었다. 장티푸스의 41도 고열이 나를 온통 삼켜 버렸을 때, 나의 귀는 40데시벨의 청력을 잃고 있었다. 현대의학의 혜택으로 다행이도 생명은 건졌지만 내게 오는 모든 소리를 되돌려주어야 했다. 그 후 이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에 청력은 뭉턱뭉턱 잘려 나갔다. 
답답했다. 상대방의 입모양으로 대충은 알아듣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나 전화는 더욱 못 들었다. 또 이상스러운 것은 고음 상실증이었다. 아이들 목소리, 금속성, 여자들의 가늘고 높은 소리는 감감하고 귓전은 늘 찬바람이 지나간 것처럼 허허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사람을 피하는 버릇이 생겼다. 소외된 인간의 처절한 고독을 씹으며 본의 아닌 자폐증 환자가 되어갈 즈음이다. 고열로 스트랩토마이신을 먹은게 부작용으로 청신경이 마비되어 재생불능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청력을 되찾으려고 전국의 유명하다는 이비인후과를 찾아다니던 일요일의 방황도 절망이었다. 겁먹은 아이처럼 눈은 커지고 귀가 못 듣는 대신 눈의 직관력이 상당히 발달해 갔다. 응시하는 눈빛이 지글지글 타올랐다.  방안에 누워 있어도 빗소리가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후둑후둑 가슴으로 묻어 왔다. 
그 무렵 포장도 되지 않고 인도와 차도의 구별도 되지 않은 시골 신작로에서 곧잘 수모를 당했다. 소심증에 매어 조심스럽게 길을 걷노라면, 소리없이 미끄러져 와 옆에 선 운전기사의 쇳소리가 등덜미를 잡는다. 
"쌍, 저리 비켜, 머저리 여편네야" 
분명 좌측통행을 했으면서도 미안하고 부끄러워 쩔쩔 매었다. 교직에 있을 때 강습장에서의 일이다. 
왕왕거리는 질 나쁜 확성기는 뇌신경을 무차별 사격해 왔다. 보청기의 볼륨을 높여도 리시버를 아무리 바로 잡아도 강의는 소음 속으로 빠져 나갔다. 그 때 갑자기 강단 위의 강사가 총을 겨누듯 내게로 손가락질을 했다. 
" 당신은 뭐요? 
지금 무슨 시간인데 그따위 장난을 하고 있소? 라디오 이리 갖고 오시오" 
수강생 300명, 600개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된 순간 나는 소돔과 고모라의 소금 기중이 된 롯의 아내처럼 뻣뻣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웃었다. 멋쩟고 미안하고 부끄러운 그 애매한 귀머거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 내 탓은 아닙니다.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제발 비오니 질시마는 마십시오" 라고 애원을 했다. 그분들께 영혼의 귀가 뚫려 있다면 이 처절한 절규가 들렸으리라.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음향이 차단된 참으로 답답한 상태에서도 생을 부인하지 않았다. 절벽같이 완전히 차단된 세계에서 참담한 자아투쟁에 눈 떳을 때,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돌아선 썰물자리에 오도카니 혼자 섰을 때도 생의 이컨에서 나의 원고지에 사직서 두통을 썼다. 하나는 직장에 대한 사직서요, 또 하나는 부끄러운 내 인생에 대한 사직서였다. 
내게 오는 수모, 질시, 나 스스로 느끼는 불편은 모두 참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계를 느꼈다. 내게 아름다운 영혼이 있다는 그 재산만으로 나는 살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자부해 왔으나 가족에게, 이웃에게, 나아가서는 사회에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견딜 수 없게 했다. 어디에고 쓸모없는 잉여인간, 멍청한 귀머거리, 나는 그 때 슬픔을 어둠에 타 마시고 밤새도록 피아노를 두드렸다. 축제였다. 내 생애의 마지막 향연이었다. 높은 음 부터 차례로 죽어가는 하얀 키를 난타하며 신의 계획이 바로 이것이냐고 항의 했다. 
빨간 포도주에 쏟아부은 수면제 40알, " 하느님, 저는 이제 죽습니다. 살고 싶어요. 뜨겁게, 열렬히,. 이것은 자살이 아니고 숙명입니다."   나는 천천히 유리잔을 집어 들었다. 그 때였다. 눈앞에 반짝 섬광이 비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스쳐 지나간 환한 빛, 나는 보았다. 나는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소나기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억세게 퍼부었다. 유리창을 열고 커턴을 젖히며 박으로 뛰어 나가 나갔다. 억센 빗줄기를 맞으며 나는 서 있었다. 
서서히 어둠이 먹히며 비가 그쳤다. 어둠을 몰아 버린 동녁 가을에 뻗쳐 오르는 새로운 태양, 나는 그 자리에 꿇어 앉았다. 내게는 빛이 남아 있다. 아직도 성한 두 눈과 두 손, 두 발, 그리고 병들지 않은 싱싱한 마음 , 이것만도 내게는 과분하다는 생각이 자성의 빗발로 나를 씻어 내렸다.. 
"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는 것은 절망이란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들리지 않는 불행보다 볼 수 있는 희망을 선택키로 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건강한 불구자가 얼마나 많은가. 비록 육체는 한구석 일그러졌다 해도 그 역경 속에 꽃피운 산 역사, 헬렌 켈러나 베에토벤.그들이 인류에게 끼친 업적이 얼마나 지대한가. 
항상 보청기의 리시바를 꽂고 다니다 보면 우리 안의 원숭이를 구경하듯이 오며 가며 꽂히는 시선들이 역겨울 때가 많다. 그러는 사이 내게 이상한 변화가 왔다. 누가 빤히 쳐다보면 나도 쳐다 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작정 웃어 준다. 쳐다봐 주는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처음에는 오기가 발동한 상태였지만, 반복하다 보니 오기는 어디 가고 따뜻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또 이상스러운 것은 가시처럼 와 박혔던 시선이 가시가 아닌 염려의 시선임을 차츰 감지하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세상에는 오해도 많다지만 나는 모두를 오해하고 살아온 것이다. 귀만 막힌 것이 아니고 마음의 창문까지 닫아 버렸던 것이다.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하는 한, 사회가 나를 아끼고 있는 한, 남을 도울 한가닥 사랑이 남아 있는 한, 나는 기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싹튼 것이다. 내 진한 목숨이 색깔로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새겨 버림받은 이, 가난한 이웃에게 큰 사랑의 빛을 주고 싶다. 
배고픈 이는 배고픈 이가 받아 안고, 우는 이는 우는 이가 달래주기 때문이다. 담록의 과수원에 은빛 파도가 일렁이는 아름다운 달밤이다. 이런 밤이면 빛의 속삭임을 듣고 싶다. 음악을 듣고 싶다. 가슴으로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