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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미 - 문태준(문인들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좋은시)

Joyfule 2005. 3. 12. 13:04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은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돌아니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릅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젹셔준다
    문태준 시인 문인들은 문태준(文泰俊·35) 시인의 ‘가재미’를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시 중 가장 좋은 시로 뽑았다. 선정작업은 도서출판 작가(대표 손정순)가 이시영 문정희 최동호 정일근 안도현 등 시인·평론가 120명을 대상으로 했다. 문 시인은 지난해에도 시 ‘맨발’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선정작업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유성호씨는 “가슴에 다가오는 절절한 체험을 주위 사물과 결합시켜 재현해 아름답고 진한 서정을 길어 올렸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재미’는 말기암 환자에 대한 기억 속 장면들이 언어의 표면으로 서서히 인화되는 순간을 채록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 두 눈이 한쪽에 몰려 붙어 있는 가자미 (‘가재미’는 경상도 사투리)는 목전에 다가온 죽음만을 응시하는 환자를 상징하고 있다. 문 시인은 이 시가 “어렸을 적부터 고향 (김천시 봉산면 태화리) 마을에서 같이 살다가 작년에 돌아가신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문 시인은 1994년 등단해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을 냈으며, 동서문학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