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 교회가 약자 교회를 다루는 법
필자는 충주의 한적한 시골에서, 다수의 교회들이 하지 않는 사역을 하면서 자그마한 교회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목회자이다. 기성교단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다른 목회자들과 교류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기존의 교회지도자들이 하는 사역이나 신앙방식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의 사역은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카페를 열고 칼럼을 실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필자의 사역이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지는 필자의 칼럼을 읽는 이들의 선택의 결과에 달려있다.
물론 이 사역을 하면서 역풍도 많이 맞았고 비난이 쇄도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칼을 가지고 찾아오겠다고 위협을 한 이도 있었으며, 영성학교를 찾아와서 대충 둘러보고 가거나 이곳에서 훈련을 받다가 퇴출당한 이들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필자가 이단의 괴수이며 사이비 교주라고 떠들어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사역의 영향력이 크지 않고 교회공동체가 자그마하기 때문에 기성교단이나 교회에서 그리 눈여겨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필자의 입김이 세지거나 교회공동체의 규모가 커진다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그래서 오늘은 강자인 다수의 교회가 약자인 소수의 교회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우리네 교회는 거의 대부분이 교단소속이다. 교단의 사전적인 용어는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종교단체이다. 그러나 내막은 조금 다르다. 같은 기독교를 믿고 있더라도 자신들이 추종하는 신학자의 교리를 따라서 가르치며, 신학교를 세워서 배출한 목회자들에게 목사안수를 주어 교회를 세우게 하여 교세를 넓히려는 본부와 같은 곳이 바로 교단이다. 그러므로 교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들이 숭배하고 추앙하는 신학자의 교리의 잣대를 들이대고, 맞지 않으면 배척하면서 경계하거나 이단이라고 부르면서 참여나 교류를 금지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물론 그들의 판단이나 행위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밑바탕으로 시작된 곳이 아닌가? 그러므로 교단에서 판단하는 근거는 성경적인 잣대로 이단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단은 그렇게 이단을 판단하지도 정죄하지도 않는다. 자신들과 색다른 주장을 펼치고 다른 신앙의 방식을 추구한다면, 먼저 이단이라고 발표하며 배척하고 금지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무리들이 주장하는 교리나 신앙방식이 성경의 잣대로 틀렸다고 말하기에 애매모호하며, 이단으로 선포한 교회가 점점 커져서 영향력이 지대해지면 그들을 자신들의 범주 안으로 들이게 된다.
그 좋은 예가 순복음 교단이다. 처음에 순복음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는 기성교단에서 이단이라고 폄훼하고 비난하였지만, 그들이 거대해지며 영향력이 커지자 이단교회라는 비난에서 꼬리는 내렸다. 이들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잣대는, 성경적인가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추앙하고 숭배하는 신학자들의 교리와 맞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려는 요지는, 그렇게 판단하는 게 정말 나쁘다는 게 아니다. 교단이 세속적인 이익집단이라면 그런 대응방식이 당연할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에 중대한 침해를 입힐 수 있는 세력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고, 피치 못할 때는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교단은 기독교를 믿는 교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세속적인 이익집단과 같은 논리와 방식으로, 다른 교회를 배척하는 게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강자이고 다수인 교회들은 자신들과 다른 신앙방식이나 목회철학을 가진 교회에 대해서 실눈을 뜨고 지켜보다가, 이들의 규모나 세력이 커지면 이단이라고 선언하면서 교인들에게 문단속을 시키고 있다. 그래서 소수의 주장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능력과 지식이 없는 대다수의 교인들은, 자신의 교단이나 교회에서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배척하고 경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는 잣대는,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교단에서 추앙하는 신학자의 교리나 기존 교회에서 행해오고 있는 신앙방식과 다르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필자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1분짜리 영접기도에 아멘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는 것도 아니고, 성령이 자동적으로 들어오신 상태도 아니라는 구원론과 성령론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성령의 증거나 변화, 능력이나 열매가 있는 지로 검증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교회에서 주장하는 교리는 자신들이 추앙하는 신학자의 성경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서로 주장하거나 강조하는 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거나 성령의 증거나 능력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강자이며 다수인 우리네 교회는 약자이며 소수의 교회에 대하여,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면 사악한 이단교회라고 폄훼하며 비난에 열을 올리고 교인들에게 문단속을 시키고 있다. 이런 대처방식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식도 아니다.
기독교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강자이고 다수인 유대교에 대해서 힘없는 약자이고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300여년이 지나자 세계 최고의 강대국 로마황제가 믿는 종교가 되었으며 기득권층의 종교가 되었다. 그 이유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이후에 교회는 부패되기 시작했다. 힘이 세지고 부와 명예를 거머쥔 교회지도자들이, 배에 기름이 끼어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후로 교회는 세상과 사람위에 군림하면서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게 되었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시대의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나 증거가 없이, 지극히 종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화려한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 뒤에는, 부와 명예를 좇는 교회지도자와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려는 교인들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미 배가 부르고 권력의 맛을 들인 기성교단과 교회들은, 자신들의 영향력과 위상에 도전하거나 위협이 되는 교회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시퍼런 칼을 꺼내들고 휘두르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교회지도자들의 머리를 타고 앉아 자신들의 생각을 속여서 넣어주는 미혹의 영이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뜻을 경멸하고 멸시하면서,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방식으로 강자인 다수가 약자인 소수를 다루는 세상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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