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기독 여성의 리더십
심민수(지구촌 목회리더십연구소장 / Ph.D)
현대는 여성의 시대입니다.
오늘날 같이 여성이 대우받고 인정받고 기대되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방송국마다 여성 앵커들의 당당한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새로 임명된
신임 여성 판검사들의 수가 남성의 수를 넘어 설 태세입니다.
서울대에서 여성 총학생회장이 선출되었는가 하면,
최근에는 전국적 규모의 운동권 대학생들의 연합이라 할
한총련 위원장에 여학생이 뽑혔다는 소식도 접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성 호주제 폐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아버지 어머니 성 모두를 동시에 붙여서 쓰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정 경제의 주도권이 아내들의 몫이 되고 직장의 많은 역할이
여성들에게로 넘어간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이 서구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여권 신장의 모습은 단순히
세계적 현상에 편승된 외부적 환경 요인에만 기인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본래 지혜롭고 의지가 강하며
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 발전의 공(功)을 우리 여성들에게서 찾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교회의 성장과정을 생각해보아도 그렇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의 헌신적 기도가 있었고 성미를 뜨던 정성스런 손길이 있었으며
여전도회를 통한 전도와 구제 사역이 활발히 이루어져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 여성들은 문자 그대로 교회의 음지(陰地)에서 일하면서
양지(陽地)를 지향해 왔습니다.
따라서 교회 여성들의 교회 사랑과 헌신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이끌어 온
견인차의 한 축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사회의 변화 속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증대될 우리 기독 여성들에게 이제는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 갈
시대적 사명(mission)을 묻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기독 여성들에게 요청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여성 고유의 모성(母性)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한 가정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에 특색이 있는 것처럼
리더십에도 아버지형의 남성적 리더십과 어머니형의 여성적 리더십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남성적인 리더십이 리더십의 표상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기존 관행을 혁신하고 과감한 변신을 가능케 하는 리더십이 남성적 리더십이라면
여성적 리더십은 기존의 관계를 보존하고 안정시키는 데 적절한 리더십입니다.
남성적 리더십이 조직의 융화를 깨뜨릴 수 있고 인간관계에 틈을 내어
조직력에 누수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는 데 반해,
여성적 리더십은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조직을 달래는 능력이 있어서
구성원의 유대는 물론이고 관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관계지음’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쩌면 “신앙이란 관계지음의 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녀 관계로 전환된 이후,
우리는 또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들 즉 이웃, 가족, 나 자신, 그리고
자연 등과의 관계에서도 화해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기독 여성 리더십의 탁월성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담아내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어머니의 밀어주는 사랑은 모든 관계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이웃과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들을 세워주고 회복시키는
‘관계 미학의 표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회복시키고 화해시키는
‘보이지 않는 큰 손’의 역할이 될 것입니다.
둘째, 건강한 가정을 가꾸어 가는 섬김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이 사회의 건강 수준은 결국 가정의 건강 정도에 비례합니다.
각 가정이 건강하면 결국 사회도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건강한 가정은 성숙된 신앙적 자세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섬김의 리더십은 성숙된 자세의 한 양상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와는 상반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섬김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었고 제자 훈련의 원리였습니다.
섬김은 기독 여성들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문제는 이 섬김을 리더십으로까지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봉사 차원의 섬김이 아니라 가정을 섬김의 자세로 이끌어 가는
성숙된 모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남성들이 행세하던 시절은 “아! 옛날이여,....” 꼴이 되었습니다.
이미 중년 남성들은 명퇴니 조기 정년이니 하여 가정에서
‘고개 속인 남자’로 수세에 몰려 힘을 잃고 휘청거리는 지경입니다.
세상의 방식이라면 능력 있는 아내들이 남편들을 제겨 놓고 나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적 원리는 좀 더 현숙한 모습을 요구합니다.
현숙한 여인을 노래한 잠언 31장은 우리들에게 시대를 초월하여
현숙한 여인이 “돕는 배필”로서 어떻게 남편을 도와 한 가정을 세우며
리드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런 자[현숙한 여인]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자기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그 결과 “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그렇습니다.
근면과 성실 그리고 사업적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남편의 가치와 인격을 높이는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현숙한 여인이 있는 한,
그 가정은 건강하고 행복한 천국으로 남게 될 것이고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선한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셋째, 건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기 부정의 신앙적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소유, 더 나은 인기를 흠모합니다.
신앙은 낮은 데로 임한 사랑, 나눔으로 커지는 풍요,
한 손이 한 일을 다른 손이 모르는 겸허를 사모합니다.
세상은 쟁취와 자기주장에 관심이 있지만 신앙은 협력과 배려를 미덕으로 여깁니다.
세상에 가까울수록 “가진 것”이 두려움을 낳고 투기와 갈등을 만들지만
신앙에 가까워질수록 “베푸는 것”에서 새로운 삶의 동기와 보람을 찾게 됩니다.
세상의 원리에 깊이 빠져들수록 죄진 자를 향해 돌을 들지만
신앙의 원리가 내면화 될수록 남의 죄를 보면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평화를 부르짖고 정의를 외치는 행위의 모든 동기가
자기 유익으로부터 생겨나지만 신앙적 동기에서 나온 행위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부인된 신앙적 여성 리더십은 세상의 여권 운동가들과는
뚜렷한 차이점을 갖게 됩니다.
남성들에게 빼앗긴 자리를 다시 찾는 것에 후자의 관심이 있다면
전자는 남성들을 보완하고 그들이 할 수 없는 자리에서 능력을 나타냅니다.
세상이 흠모하는 여성 지도자 상(象)은 강력한 새 정치력으로 그려지지만
신앙의 눈으로 태어난 기독 여성 리더십은
테레사의 가냘픈 손에서 위대한 영향력을 봅니다.
그러므로 세상 가치에 젖어 인기에 영합하거나
사람들의 시선만을 주목하는 자들이 될 것이 아니라
빛 바랜 자리에서도 주어진 사명을 위해 매진해 나가는 지도자들로 서야 합니다.
세상의 역사는 이런 이들을 기억하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선한 일들은 이들의 헌신의 결과로 얻어진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