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문장'의 월간 최우수 작품)
비타민 c 아줌마
사내는 고등어를 좋아했다. 아내가 생선을 사오라 하면 고등어만 사서 건넸다. 아내는 사내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사내는 짐바리 자전거에 커다랗고 노란 단무지 박스를 노끈으로 꽁꽁 묶어 매달아 그 안에 비니루를 실어 날으며 돈을 벌었다. 열심히 판 돈을 모아 세 발 오토바이로 바꾼 날, 사내는 고등어를 구어 먹었다. 장사가 잘 되어 탁배기 한 잔에 취 할 때면 검은 비니루 봉지에 고등어를 실어 날랐다. 사내는 여러 토막을 내어 프라이팬에 튀기면 뼈까지 오도독 오도독 쩝쩝 씹어 먹었다.
줄줄이 딸들이 다른 생선을 사오라 성을 내도 여전히 고등어였다. 사내의 집에는 바다가 아닌데도 고등어 냄새가 진동했다. 딸들의 친구들은 옷에서 냄새 난다며 놀려댔지만 고등어는 끊이지 않았다. 어쩌다 포장마차에서 인심 쓰는 척 술집 주인이 건네는 고갈비를 먹었다가 먹을 것으로 장난질한다고 대판 싸움을 했다. 그 사내는 바로 나의 아버지다. 딸들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거나 우리 똥강아지 하며 엉덩이 한 번 두드려 준 적이 없는 사람.
조치원 장이 섰다. 4일. 9일에 장이 서는데 십 수 년을 보아 온 장이라 지금은 별 감흥이 없지만 처음으로 선 장을 보았을 때의 설레임, 흥겨움은 잊을 수 없다. 비린 맛을 보게 된 오천원권이 비늘로 가득한 플라스틱 구멍으로 들어가고 달착지근한 복숭아와 자리 바꾼 만 원권이 향기를 날리며 우아하게 전대로 들어갔다. 북적거리는 장을 걸을 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무엇을 살 지 정하지 않으면 돈이 모자라기 일쑤, 어떤 이들은 대형 할인점에 가면 충동구매를 하여 후회를 많이 한다지만 정작 나는 장에 나가면 그렇다. 순대도 먹고 싶고, 장날에만 파는 잔치국수도 먹고 싶고, 떨이로 파는 버섯도 왕창 사고 싶다. 늘 남아서 시들어버려 먹지 못하는 것이 많아지자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였더니 한결 수월하다. 오늘 살 물건은 돼지고기 한 근,호박,도토리묵,표고버섯,약밥이다.다른 것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장을 둘러보는데, 오늘은 고등어가 물이 좋다.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시린 마음은 한 여름의 뙤양 볕 아래에서도 한기를 느낄 만큼 강렬했다.
아버지는 고등어를 좋아하셨다. 고향집에 올라가면 항상 고등어가 웃고 있다. 내가 사는 집에선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 그 맛이 그리워 한 손 사다가 구우면 비려서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계획에 어긋나지만 고등어를 사다가 굽기로 마음먹었다. 실패를 하지 않으려 우유에 담가서 준비하였다.
생선을 재우는 동안 텔레비전을 켰다. 때마침 아빠의 고향인 단양, 어느 동네의 한 어르신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백발에다 얼굴은 검게 그을려 검버섯조차 구분이 되지 않던 어르신이 젊은 날을 회상하시며 풀어 놓은 인생 보따리는 하루 꼬박 일해도 밥 곯기가 다반사이던 그 시절, 하루 일이 끝나고 어슴푸레 저녁이 내려앉은 어둠속의 집으로 돌아갈 때 손에 고등어를 엮어 가야 그것이 행복이었다고 다른 생선은 비싸서 엄두도 못 냈다고 하셨다.
우리 아버지 남이 쓰다가 버린 장판을 주워와 깔았어도 새 것이 생겼다며 신나하던 줄줄이 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우리 딸 예쁘다는 말, 이런 흔한 말을 하지 않고 아무런 사랑 표현 할 줄 모르시던 아버지에게 고등어는 사랑의 대화이고 행복이었던 것이다. 나는 왜 그 때 고등어를 더 맛있게 먹어주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를 접시에 올려놓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젓가락으로 살점을 발라 아이들의 숟가락에 올려준다. 껍질이 바삭바삭 고소하게 씹히고 성에 차지 않는지 숟가락으로 접시를 박박 긁으며 고등어를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것이 아버지가 느꼈던 삶의 행복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아 본다. 나도 고등어를 좋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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