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파는 남자와 두부 파는 여자
주인석
한 마디 말 속에도 사람의 살아온 모습이 깃들어 있다. 짧은 시간 몇 마디의 대화만 나누어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이 느껴진다. 아울러 눈을 보면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 빨리 상대를 알 수 있다. 이렇듯 말은 언어를 징검다리로 한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사람의 삶까지도 포함한다.
삶을 가까이서 통찰할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시장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으로 목요일마다 난전이 선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옛날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오일장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난 듯 정겹다. 목요일마다 장바구니엔 부식거리가 넘치고 마음엔 덧거리라는 아름답고 갸륵한 미덕의 씀씀이가 충만하다. 특히 장의 마지막 좌판을 지날 때 들리는 두 음성은 매번 나를 웃게 만들면서 말 한마디가 주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먹고 가이소.”
“사 가이소.”
남자가 '먹고 가이소'라고 곡조를 담아 외치면 여자는 꼬리를 잡듯 '사 가이소'라는 말로 장단을 맞춘다. 빼빼마른 체격에 딱딱한 과자를 파는 남자와 물렁한 두부를 파는 뚱뚱한 여자는 마주보고 있다. 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보기와는 다르게 남자는 감상적이고 여자는 논리적이다. 남자는 먹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여자는 사 줘서 감사하다고 한다.
남자는 갖가지 과자를 늘어놓고 무조건 먹어 보고 가라고 한다. 몇 개 지역의 억양과 방언이 섞인 듯한 그의 목소리에는 끈끈한 정이 묻어있다. 그의 음성이 과자냄새와 섞여 귓구멍에 착 달라붙으면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혹시 그가 과자를 많이 팔기 위한 사탕발림 상술을 부리나싶어 유심히 살펴보지만 과자를 먹는 동안 그는 절대 손님을 보지 않는다. 돌아서서 과자를 구우면서 '실컷 먹고 가이소'만 외칠 뿐이다.
하교시간이 되면 배고픈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한 움큼씩 과자를 집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도 남자는 오직 실컷 먹고 가라고만 한다. 마치 과자를 못 나누어 줘서 안달이 난 사람 같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양심 있어 보이는 한 학생의 말에 그는 과자를 한 움큼 더 집어 준다. 혹시 그에게 모질게도 배고팠던 옛날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질없는 내 생각은 꼬리를 물고 늘여져 결국엔 그의 장사까지 염려가 되어 나는 필요 이상의 과자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또, 먹기만 하고 그냥 가버리는 사람들을 말로 붙잡듯 ‘맛있는 과자라서 안 살 수가 없네.’ 라는 불필요한 말까지 흘리기도 한다.
과자를 종류별로 맛보고 바구니에 골라 담을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다. 계산할 때는 몇 번이나 불러야 그가 돌아보니 손님이 통사정해서 과자 값을 내는 모양새다. 돈을 낼 때 단 한번, 남자의 눈을 마주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배짱 장사가 아니라는 것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 가라고 외치는 여자 역시 두부를 주사위 크기로 잘라서 시식용으로 내놓는다. ‘이모, 그냥 가지 말고 두부 먹고 가’ 라는 간드러진 목소리는 먹지 않고 그냥 가면 종일 내내 몸을 간질거리게 한다. 그 음성과 눈을 외면할 수가 없어 이쑤시개에 꽂힌 두부 조각을 입에 넣는다. 내 입만 빤히 쳐다보던 여자는 두부가 목구멍에 넘어가기도 전에 맛있냐고 친절히 묻는다. 그녀의 물음에 언어 수갑을 채인 듯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도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여자는 내가 이쑤시개를 놓기 바쁘게 비닐봉지에 두부를 담고 지폐에 대한 잔돈까지 준비하는 신속함과 치밀함을 보인다. 나는 시식한 것이 족쇄가 되어 여러 번 두부를 산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비닐봉지를 건네받기 바쁘게 또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낸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일일이 눈을 맞추고 말로 붙잡으려니 여자는 입이 분주하고 온몸이 바쁘다. 뚱뚱한 몸과는 상관없이 동작과 말이 민첩하다. 조금 어둔해 보이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날렵함이 몸에 익어 있다.
남자나 여자나 먹는 것으로 손님을 부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남자의 가게 앞에는 늘 사람이 와글거리고 여자의 가게 앞에는 한산하다. 손님은 몸놀림의 재빠름으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마음 놀림의 굼뜸으로 머물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범인들은 몸보다는 마음으로 전해지는 정신 감응에 더 빠른 반향을 보인다.
사람들은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서도 공유하는 감정이 비슷한 모양이다. 남자를 보면서 먹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걱정이고, 여자를 보면서 먹고 가는 사람이 너무 없어 늘 염려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내 생각에 꿀밤을 놓으며 빙그레 웃는 얼굴로 두 가게 사이를 지난다.
남자와 여자는 난전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남자의 퍼주기 식이나 여자의 쳐다보기 장사가 평범한 내 계산으로는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모두 잘 살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수 만 가진데 오지랖 넓은 나는 내 앞가림도 못 하면서 괜히 남을 걱정했다. 사람들의 말 속에는 그 사람만의 살아가는 특별한 방법이 들어 있음을 몰랐다. 길지 않는 한 마디 말 속에도 그 사람의 삶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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