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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길들이기 - 유영자

Joyfule 2015. 4. 7. 01:19

 

남편 길들이기 남편의 심리를 알면쉽다

 

남편 길들이기

  

 

 나는 처녀 적에 마음이 여리고 곱다는 소리를 들었다. 상스런 소리도 할 줄 몰랐고 거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남자들이 볼 때 보호해주고 싶은 그런 모습으로 몸도 왜소하고 연약했다. 키 158센티에 몸무게 45킬로그램으로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남자는 다름 아닌 나의 남편이었다.

 

 뱃살이 디룩디룩 붙으면서 그 뱃살만큼 뱃장이 두둑해지고 강심장이 된 것도 물론 남편 덕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의 공을 치하하자면 끝이 없다. 어쩌면 남편은 나를 새로운 여성으로 이 세상에 재탄생시켜준 은인이라고나 할까. 나를 낳은 분은 생모였고 나를 키운 분은 고모였지만, 나를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사람은 남편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세상에서 ‘여자’라서 못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예전에는 남자의 그늘을 그리워하고 의지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내가 오히려 강해져서 약해빠진 요즘 남자들을 보면 어린애 같아 보인다. 그러나 모든 강한 것들은 슬프다. 그리고 외롭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슬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그렇지만, 남편 곁에 남게 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모든 게 다 남편이 나를 잘 키운(?) 덕이니 내가 어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금수만도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은혜갚음의 일환으로 부육(夫育)을 시작했는데,

 

첫째, 일 년의 반은 혼자 두어 고독을 즐기게 한다.

둘째, 시시때때로 떠나버리겠다고 협박하여 두려움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준다.

셋째, 용돈을 최대한 적게 가지게 하여 옛날의 그 방탕한 생활에 대한 대오각성(大悟覺省)으로 새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넷째, 다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자를 지배하고 억압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여 시대에 부합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다섯째,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임을 자각하게 하여 나의 ‘시종(侍從)’으로 생을 마칠 때까지 헌신하며 살게 한다. 이 다섯 가지이다.

 

 내가 남편을 버리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재산을 나눠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부자는 아니지만 모든 부동산의 명의는 내 앞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나의 고의가 아닌 자연스러운 조치이고 보면 이는 필시 하느님의 도움이었다. 그 다음 이유로는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내가 버리면 가뜩이나 술을 좋아해서 단 하루도 거르고는 못 배기는 양반이 술독에 빠져 아이들에게 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짐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흔히 말하는 것으로는 자리보존하고 누워 있는 남편이라도 있는 게 여자에게는 힘이 된다는 이웃들의 말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이유 위에 군림하는 것은 ‘믿음’이다.

 

  남편은 그동안 즐기던 온갖 잡기를 손에서 놓아버리고 이제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 필사’이다. 모르긴 해도 한숨을 푹푹 내어 쉬고 들이쉬면서 하는 고역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남편 사정이고 나는 알 바 아니다. 이미 부육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결코 내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남편의 말인즉 ‘지독한 여자’라니 그 말에 부합하는 아내가 될 생각이다.

 

 그렇게 살아온 지 어언 수년이 지났다. 남편은 이제 손수 밥 짓는 일을 비롯해 모든 부엌일이며 집안 청소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요즈음 내가 가끔 놀라는 일은 남편이 나보다 유식해졌다는 사실이다. 텔레비전의 영화를 보다가는 저것이 성경의 이야기라면서 그것도 정확하게 구약의 어느 편에 나오는 말이라고까지 호언할 정도이니 별안간 어떻게 된 일인가. 그래서 나는 남편 몰래 성경책을 뒤져보았더니 과연 맞는 말이다. 그 때 나는 남편에 대한 경탄이기보다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크, 이러다간 가까스로 장악한 권력을 다시 빼앗기는 거 아냐?”

무릇 민(民)은 눈이 어두워야 다스리기가 쉬운 법인데 싶어 두려움이 엄습했다. 남편은 나의 왕국에 단 하나뿐인 백성이요 신하인 까닭이다. 그런데 그 두려움 뒤에 이상하게도 묘한 기쁨이 일렁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나를 강하게 만든 그 남편이 나를 다시 예전의 그 여자다운 여자, 연약함이 안쓰러워 보호해주고 싶은 여자로 만들어 나의 이 슬픔과 외로움에서 구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이 깊은 밤의 잠자리에서 내 남은 삶의 소망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