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있는 두 가지 복음
가장 큰 위험
가장 큰 위험은 자기 스스로 기만하는 것이다.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진리를 등한시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빠질 수 있는 위험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육신적 성향은 성령의 음성과 진리로 교정되지 않으면, 자기 멋대로 뻗어 나가서 결국에는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도덕적 양심은 둔화되고, 마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떠나가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자신을 육신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해 줄 구세주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깊이 느끼느냐에 따라서 구세주의 도움을 구하는 심정의 간절함이 달라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깊이 인식하는 자들만을 구해 주실 수 있다. 우리가 전혀 속절없는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자신을 의지하고자 하는 모든 마음을 버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온 마음을 다하여 붙잡게 된다.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자아를 버리는 일은 그리스도를 처음 믿었을 때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늘을 향하여 옮겨놓는 매 발자국마다 그 일은 새롭게 반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이웃을 사랑하는 선은 우리 자신의 의지나 힘으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치밀어 오르는 육체의 죗된 요구를 거절하고, 타고난 이기심과 게으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율법주의적 경향을 버리고, 오랫동안 믿어온 오류와 잘못된 경험을 부인하고 버리는 일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 그분의 성품과 생애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깊이 느끼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울 수 있으며, 자아를 버릴 수 있다.
사람은 자기의 의지력의 강화를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에게는 성경이 요구하는 변화를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죄인의 양심은 성경의 진리를 통하여 변화되지 않는 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을 이룰 수 없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과 문화라고 할지라도 죄인을 하늘 자녀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변화시키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구원 얻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되지 못하는 이유
밀가루 속에 감추인 누룩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린다. 이와 같이 진리의 누룩도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그리고 끈기 있게 사람의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킨다. 천성적 성벽이 부드러워지고 제어된다. 새 사상과 새 감정과 새 동기가 마음에 부식된다. 새 품성의 표준인 그리스도의 생애가 마음 속에 아로새겨지게 된다. 마음이 변화되고 재능이 새로운 방면으로 활용되는데, 이 때에 새로운 재능을 받는 것이 아니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능이 성화된다. 양심은 각성되어서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 특성을 나타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말, 정신,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화된 특징을 볼 수 없는 것은 어찜인가? 탐욕적인 계획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룩하지 못한 성벽을 나타내며, 말이 거칠며 거만하고 툭하면 짜증을 잘 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리스도인의 생애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특징인 자기를 사랑하는 정신, 이기심, 급한 성미, 성급하고 거친 말이 나타나는 것은 어찜인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전혀 모르는 자들처럼 교만하고, 과민하며, 천성적인 괴벽한 성벽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어찜이뇨?”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그들이 진실로 거듭나지 못하였다” 라는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진리
우리가 연구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 진리, 즉 무엇이 마음에 간직하고, 사랑하며, 높이고, 순종해야 할 진리인가?”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인생의 초점을 모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셨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일을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하기 원하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이론적이기 때문에 구세주의 살아있는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아를 부정하고, 묵묵하게 겸손한 생애를 사신 그리스도의 유년 시절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30년 동안의 생애에 대해서 성경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3년 반 동안의 공중 봉사를 위하여, 그분께서는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나사렛의 목수간에서 조용히 준비하였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말 안 듣고 고집 센 염소와 양을 돌보면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침례 요한은 랍비들과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피해 광야에 가서 자신을 준비하는 긴 세월을 보내야만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은 조용히 자신의 진정한 영적 상태를 살피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준비되어 있지 못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 매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업의 최전선에 나서길 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놀라운 기적과 은사를 간구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의 권능을 맡기시기엔 그들이 너무나 준비되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틈을 이용하여 사단은 그들을 인도하는 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진리인가?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에 따라서 인간의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키는 진리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통하여 타락한 인간을 의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진리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생애에 비추어져야만 하는 빛이며, 소망이다.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키는 진리를 아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간증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였다. 나의 모든 필요와 요구는 채워짐을 받았고, 내 심령의 갈증과 주림은 충족되었다. 이 천년 전에 육신으로 이 땅을 거닐었던 예수님께서는 다시 말씀이 되어 내 생애에 역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은 내 마음에 새겨졌으며, 나는 그것을 통하여 내가 느끼고 경험하며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판단한다. 나는 더 이상 내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뜻대로 생애 한다. 나는 막연한 진리가 아니라, 확실한 진리를 발견했으며, 그 진리는 내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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