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궁극적인 승리의 길

Joyfule 2025. 4. 22. 18:40




궁극적인 승리의 길

< 궁극적인 승리의 길 >

 살면서 각종 다양한 심판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어떤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내라.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 중에도 구원받고 그 심판을 잘 승화시켜 궁극적인 승리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가?

1.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

 본문에는 하나님을 떠난 백성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묘사되어 있다(23-26절).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유다를 완전히 진멸하지는 않으신다(27절). 그것이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져야 할 이유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라.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새로운 희망의 전조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 것이 무너지면서 임한다.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만 바라보지 말고 심판 후의 역사까지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라. 한 부분만 보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버리고 전체와 미래까지 보는 통전적인 시각을 가지라. 심판의 순간에는 절망적이고 마음이 쓰리고 맥이 빠지고 힘을 잃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라. 타고 남은 재가 거름이 된다. 하나님은 힘든 현실을 통해 찾아오신다. 하나님의 심판만 두려워하고 다른 어떤 심판도 두려워하지 말라.

2. 진실한 회개를 앞세우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의 모든 성읍이 바벨론에 의해 황폐해지고 성읍 사람들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29절). 그런 상황에서 매춘부가 잘 차려입고 화장한 것이 헛된 것처럼 유다가 애굽에게 좋게 보여서 도움을 요청해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멸시를 당하고 배반을 당해 생명을 잃는다(30절). 아무리 겉모습을 잘 꾸며도 진실한 회개가 없으면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 대중 앞에서 대단하게 보여도 자녀 앞에서 초라하게 보이면 초라한 삶이다. 말은 화려해도 삶이 초라하면 점차 그 인생은 초라해진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불탈지라도 내면에 연기가 가득하면 그 불은 곧 꺼진다.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면 조만간 말라버린다. 겉모습보다 내면의 진실이 중요하다. 경건한 모습보다 경건의 능력이 중요하다.

3.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예레미야 당시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들에게 추파를 던지며 생존을 모색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으로 화를 입고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그 고통으로 인해 내는 신음 소리가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았다(31절). 그 장면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도전을 준다. 혼자 멋지게 살아갈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사람의 동행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더 필요하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믿는다고 말하면서 좋은 날이 그저 오기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믿음으로 새벽을 깨우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더러운 세상을 정화하고 혼란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데 일조하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도답게 살면 그의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차가운 세상이 따뜻해지고 절망한 인생이 힘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상처를 상급의 재료로 만들고 어둠을 빛의 전조로 여기고 시련을 성공의 계기로 삼는 역전 인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4. 의로운 약자와 함께하라

 하나님만 의지할 때 나타나는 삶의 특징이 있다. 하나님을 닮아 누군가가 의지할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약자를 살피는 마음이 생기고 특히 의로운 약자와 함께하는 마음이 생긴다.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착하게 산다는 타이틀 하나를 얻고 지혜와 용기와 단호함이 없이 살면 이단 교주에게 가스라이팅되기 쉽고 미련하고 답답한 모습이 나타나고 늘 당하는 삶을 살면서 함부로 취급 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마음의 중심이 굳건하지 않으면 공동체의 중심이나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없고 누군가의 기대주나 피난처나 버팀목이 될 수 없다. 예수님은 온유하셨지만 당시 교권주의자들에게는 차돌처럼 단단하고 권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그런 예수님을 당시 교권주의자들은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자신들의 위선의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망치질에 적개심을 가졌다. 반면에 울타리 밖의 소외된 약자에게 예수님은 따뜻한 품이 되어 주셨다. 그런 예수님처럼 온유함과 굳건함을 겸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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