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결혼은, 꼭 크리스천과 하세요
기독교는 나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 김재욱 작가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생각 맞고 사람 좋으면 종교 강요 필요 없다?
크리스천 삶 속 많은 문제들, 결국 영적인 것
신앙 문제로 당기려면 저자세일 수밖에 없어
더 많은 인내와 인품의 성숙 요구받아 힘들어
몇 년 전 한 기독교 매체에서 간단한 전화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연락을 한 젊은 여기자는 크리스천의 결혼관을 전문가와 해당 분야 저서의
저자들을 통해 파악 중이라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한 뒤에 끝으로
‘불신자와의 결혼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그래서 원론적인 차원에서 평소 소신을 밝혔다.
“크리스천이라면 꼭 크리스천과 결혼을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불신자와 결혼해 상대방을 전도할 수도 있지만,
정말 그런 목적이라면 결혼 전에 구원받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
잘할 것 같지만 열에 아홉은 같이 불신자가 되거나 교회 출석을 포기하게 됩니다.
물론 억지로 할 수는 없으니 꼭 불신자와 해야겠다면 본인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책임도 본인이 감당해야겠지요.”
하지만 유독 이 주제에서는 동의를 잘 못하고 반문을 해 왔다.
꼭 그렇게까지 단정적으로 불신자를 결혼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많이 봤습니다.
불신자를 배우자로 택하는 크리스천 중에,
결혼 후 내 신앙을 버리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신앙도 배우자도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혼 전에는 상대방도 따라올 것처럼 말하고,
상대방을 믿어서 잘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기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면서,
만일 모든 크리스천이 그런 생각이라면 배우자 대상의 폭이 무척 좁아져
결혼이 더 힘들어질 거라고 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평소에 썼던 이유를 조금 더 설명했다.
그 기자의 질문에는 배우자를 전도한다는 목적보다는 그냥 생각이 맞고
사람이 좋으면 서로의 종교는 강요할 필요 없이
삶을 맞춰가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담겨 있었다.
“참된 크리스천이라면 불신자와 데이트할 때나 결혼 이후,
어떤 대화를 나누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자녀에게는 신양 교육을 해야 할까요, 하지 말아야 할까요?
나중에 죽어서 가는 곳이 다른데 살아서 행복하기만 하면 그만일까요?
진정한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크리스천의 삶에서 많은 문제는 궁극적으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이 주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내 견해들이 참 좋다면서 다음번에
별도의 인터뷰를 해야겠다던 기자님은 이후로 연락이 없다.
다른 사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불신자와의 결혼에 크게 부정적인
내 생각이 좀 답답하다고 느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친형과 친누나부터 죽마고우, 지인 등이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았는데,
온 가족이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경우는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불신자와 결혼한 크리스천이 뒤늦게 진지하면 큰 갈등의 요소가 된다.
신앙 문제로 대립할 때는 자기 쪽으로 당기려는 사람이 저자세일 수밖에 없고,
빚쟁이처럼 귀찮은 존재가 되기 쉽다.
신앙인에게는 더 많은 인내와 인품의 성숙을 요구받기 때문에 힘이 들기도 한다.
편안하고 무탈하게 지내는 유일한 방법은 크리스천 쪽에서 쿨하게(?) 신앙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양부모가 다 크리스천이어도, 자녀들의 바른 신앙 성장이 고민이다.
어릴 때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모이던 부모들이었지만, 청년부에 남아 있는 자녀들은 많지 않다.
이렇게 부부가 힘을 합쳐도 자식을 온전한 신앙인으로 길러내기 어려운데,
혼자만 믿고 배우자까지 전도해야 하는 형편이라면 내 신앙 지키기도 어렵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신앙도 지키면서 배우자와 아이들을 제대로 인도해
신앙의 가문으로 일궈내려면, 초인적인 의지와 기도와 인내가 필요하다.
많은 고난을 넘어 그것을 이루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그런 케이스는 간증 집회에서나 가끔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 드문 일이 내게도 일어나리라고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크리스천과 함께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
세상 어떤 일에 기독교적 세계관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 있는가.
크리스천 교육을 시키면 아이들이 다 잘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세상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꿈을 펼 수도 있고 더 잘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잘 되기만 하면 그만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잘 돼야 한다.
미약하나마 신앙적 유산의 씨앗을 마음 깊은 곳에라도 떨어뜨려야,
나중에 내가 없는 때에라도 결실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것을 가져도 천하보다 귀한 자녀의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만 못하다는
믿음이 있는 부모라면, 당연히 자기 할 일을 알 것이다.
자식도 내 마음대로 구원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의 의무는 다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미혼 때는 알기 어렵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너무 먼 미래라서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나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기독교인 중에 나쁜 사람들이 많아서 욕을 많이 먹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불신자 가정에도 유익한 것들을 교훈한다.
크리스천은 부족한 사람들이고 실수도 많이 하지만, 최대한 돌이키려 애쓰고
회개하면서 제자리를 찾으려 몸부림치는 경우가 많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바른 사고를 하고자 애쓰기도 한다.
아무리 소 귀에 경 읽기 같아도, 매주 듣는 설교와 권면에 양심의 찔림도 받는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면 주변 이웃과 교우들이 있어 삶에 힘이 되고 조언자가 되어준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가정에 불화가 닥칠 때,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이들이 있어서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는 일도 많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지체들과 함께 살다 보면, 어떤 문제를 자기 성질대로 풀려다가도
조금이나마 성경적 관점으로 멀리서 보려는 생각,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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