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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시험과 그리스도인의 시험

Joyfule 2006. 1. 30. 00:46
그리스도의 시험과 그리스도인의 시험 - 김창현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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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시험에 대해 나오고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세 번 시험을 했습니다. 세 번 모두 내용은 그럴 듯 하지만 결과는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험은 예수님께서 거쳐야할 모든 과정을 건너뛰므로 고통 없이 결과를 얻게 만들어서 진정한 구세주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고난의 과정 없이 화려한 결과를 얻으라고 하는 유혹을 예수님께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만 화려했지 그 속내용은 마귀가 자신을 그리스도보다 높이려는 계략이었음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유혹을 해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에게 받는 대표적인 유혹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돈, 섹스, 권력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시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유혹이란 올바른 길에서 떠나 잘못된 길로 가게 하려는 충동입니다. 마귀가 이렇게 유혹하는 이유는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이루어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결과를 생각지 않고 당장 주어지는 만족을 갖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과정으로는 이룰 수 없거나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을 쉽고 빠르게 이루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혹이란 일종의 속임수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에 속아서 결과를 보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 가운데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고 또 더 이상 버틸 힘도 다 빠져 버린 때입니다. 바로 그 때 유혹이 오면 쉽게 무너져 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정말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을 포기하게 됩니다. 누구나 다 이런 경험을 한 두 번은 겪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도 그런 류의 시험이었습니다. 40일을 주리신 주님께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함정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자신을 자랑하려고 금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금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위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기적을 베풀어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운다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앞세우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앞세우게 하는 것이 사단의 계략입니다. 우리가 받는 시험은 돈, 섹스, 권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보다 앞서면 결국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사단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먼저'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먼저 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족, 특히 자녀문제에 있어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자녀 교육이나 자녀들의 장래 문제에 걸리면 이 우선순위에 변동이 생깁니다.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보다 앞세우지는 않지만 자녀와 부모, 배우자의 문제를 만나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10). 주님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늘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개미의 사회생활을 아십니까? 개미의 사회는 감독하는 개미도 없습니다. 일을 시키는 개미도 없습니다. 그런데 개미들은 자기가 속한 개미 사회를 위해, 그리고 자기의 여왕개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서슴없이 내놓습니다. 그래서 개미사회를 완벽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도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6-8). 그런데 이 개미에게도 유혹이 있습니다. 딱정벌레의 유혹입니다. 이 딱정벌레는 개미를 유혹해서 자기를 위해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개미집을 찾아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바로 유혹입니다.

딱정벌레가 개미집 앞으로 다가가면 개미들이 나와 더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목에 난 털을 건드리면 딱정벌레는 단물을 냅니다. 개미들은 단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단물을 먹고 나면 이 딱정벌레를 동료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딱정벌레를 자기들 집 안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딱정벌레가 주는 단물을 받아먹게 됩니다. 그런데 이 단물이 문제입니다. 이 단물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몇 번 먹으면 곧 개미의 행동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더 이상 개미 알을 돌보지 않으며, 더 이상 여왕개미를 위해 일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돌보던 개미 알과 애벌레를 딱정벌레의 먹이로 주고, 딱정벌레의 알을 돌보는 딱정벌레의 일군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개미 사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유혹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맛을 보면 결코 그 맛을 잊을 수 없고, 빠져들기 시작하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 바로 유혹입니다. 마귀가 제시하는 단물, 그것이 바로 돈, 섹스, 권력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무리 정결하게 살았다고 해도 이 돈, 섹스, 권력에 한 번 맛들이게 되면 우리의 삶은 변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님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 돈과 섹스와 권력을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고, 내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지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만들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뺏기게 될 때까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이러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패망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승리를 이루신 주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이 있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이 피는 속죄의 피요, 깨끗케 하는 피입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행동을 깨끗케 하는 피입니다. 마귀는 단물을 주지만 예수님은 피를 주셨습니다. 마귀는 일시적인 쾌락을 주지만 주님이 주시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비결은 그 가치를 비교하는데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일시적인 것과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것을 비교했을 때 우리는 그 결과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어느 길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며, 어느 길이 멸망으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승리하여 열어 놓으신 길로 가야합니다. 잠시 쾌락을 누리다가 보면 영원히 그 길에서 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처럼 외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