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환베이징 특파원
가끔 버스로 출근하다 보면 평소에 흘려봤던 베이징 거리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왕징(望京)에서 출발한 버스는 허름한 저층 아파트촌과 날이 밝았는데도 왠지 음침한 빈민 거주구역을 지난다. 차로도 좁고 행인·자전거·오토바이를 피하느라 걸핏하면 브레이크 소음이 귓전을 때린다. 비좁은 인도에 100명이 넘는 주민이 서서 0.4위안(약 70원)짜리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버스가 베이징의 도심권인 제4순환도로 밑을 통과하면 무대가 180도 바뀐다. 길은 8차로로 넓어지고 주변을 담으로 둘러싸고 경비가 지키는 고급 단독주택촌과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 아파트 단지가 위용을 드러낸다. 50m 남짓 떨어졌을 뿐인데 길 하나 건너면 1970년대 사회주의 중국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대 자본주의 중국으로 옮겨온 기분이 들곤 한다. 중국은 개혁·개방 30년 동안 빛나는 경제발전·고도성장을 성취한 반면, 이렇게 빈부격차가 무섭게 벌어지는 ‘이상한 사회주의’ 국가가 됐다.
중국에서 겪는 부조화한 느낌은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난다. 지난 주말 기상관측 61년 만에 베이징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2층짜리 시내버스가 달리다가 물에 떠서 조난을 당했고, 경사진 도로마다 물이 고여 길이 끊겼다. 여름이면 사막 기후에 가까웠던 베이징에 난데없는 물폭탄이 터진 것이다. TV채널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앵커들이 베이징 정신을 강조하며 일치단결 구호를 외쳤다. 베이징에 출장 온 한 홍콩 교민은 “저렇게 세련된 차림과 표정으로 60~70년대식 캠페인을 쏟아내고 있는 건데, 기분 참 묘하다”고 털어놓는다. 하드웨어를 최신식으로 혁신했으면 걸맞은 소프트웨어로 바꿔주는 건 상식인데 중국에선 하드웨어만 좋으면 된다는 게 상식인 모양이라는 것이다.
다년간 차이나 워치를 해온 한 지인은 "하도 못하게 하는 게 많아 눈치만 쌓이다 웨이보가 등장하자 억눌리고 비틀린 욕구가 봇물 터지고 있는 것”이라며 “헐크의 옷이 찢어지는 순간이 얼마 안 남은 느낌”이라고 평했다.
위기를 알리는 알람 소리에 중국의 지도층이 빠르게 대응한다면 해법은 정치체제 개혁으로 모아진다. 당 아래 있는 사법권을 독립시켜 사회 각 부문에서 견제와 균형이 작용하도록 하고 감독권을 당에서 분리시켜 부정부패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일 말이다. 차기 10년을 책임질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