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를 벤치마킹하라.
세계적인 등산가가 되려면 히말라야 산을 뒷동산 다니듯 등반한 산악인을 따라다니며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성악이나 발레, 악기, 스포츠, 미술 등의 분야에 뛰어난 자녀들로 키우려는 부모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 전 재산을 털어 넣고 아침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명한 스승에게 배우는 자녀들의 뒷바라지 하는 것은 우리네 부모들의 흔한 일상이다. 그렇다면 신앙도 이렇게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당신은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부모의 신앙의 본받으려고 애쓰고, 교회의 목사에게 성경과 신앙방식을 열심히 배우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성경의 위인들처럼 놀라운 영적 능력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라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교회에서 배우는 것은 형식적인 종교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따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가장 탁월한 스승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실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배워서, 자신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를 나누었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통로는 무엇인가? 바로 기도와 말씀이다. 말씀을 통째로 외워서 백성들에게 가르쳤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말씀을 지식으로 머리에 넣어주고 가르쳤기에, 정작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죽이려 들었던 것이다. 이는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이 없는 건조한 성경지식을 쌓아두는 일에만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말씀을 비추어주셔서 깨닫게 해주셔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최고의 스승이신 예수님께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벤치마킹하면서 삶에 올곧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1. 예수님의 기도방식을 본받으라.
첫째, 예수님은 기도의 습관을 들이시고 쉬지 않고 기도하셨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눅22:39,40)
성경의 위인들은 죄다 기도의 습관을 들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도의 습관을 들였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왜 기도의 습관을 들이셔야 했을까?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나도 이 땅에 있을 때 사람이 하는 것처럼 훈련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도 사람의 몸을 입고 있었을 때는 육체의 연약함과 한계를 잘 알고 있었기에,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습관을 들여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시고, 틈만 나면 한적한 곳을 찾아다니시며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깊은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하고, 낮에도 틈이 나면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기도의 습관을 들였는데, 먼지만도 못한 우리가 기도의 습관을 들이지 않고서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둘째, 골방에 들어가서 항상 기도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21:36)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디에서 기도하셨는가? 많은 크리스천들은 교회나 기도원을 찾아가 기도한다. 그러나 특정한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은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들일 수가 없다. 왜 교회나 기도원 등의 특정한 장소에서 기도하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다른 이들의 이목을 살피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장로가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가 기도하는 지 목회자나 다른 교인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나 장로들은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이유 있다. 기도란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도 방해하지 않고 신경 쓰고 싶지 않으려면, 집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시라. 그러나 사람들은 집에서 기도하려고 하지 않고, 집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는 꼭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야 공부가 된다고 불평하는 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 우등생이 되려면 학교나 집에서도 꾸준하게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항상 기도할 수 없다. 교회가 집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교회나 기도원이 아니라 집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고, 사무실이나 직장 등 언제 어디서나 틈이 나면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항상 기도할 수 있고 쉬지 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2.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으로 기도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9~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위의 구절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밝히는 동시에, 그 대상을 부르는 기도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대상은 야훼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가장 많이 기도해야 하는 내용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런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수도 없이, 하나님을 찾아라, 그분을 간절히 찾아라, 그분의 얼굴을 구해라,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해서 찾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비롯한 구약의 성경의 위인들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기도가 전부였고, 예수님도 찾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면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사도들과 120명의 제자들이 기도한 내용도 성령의 내주였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기도의 핵심을 하지 않는다는 게 기이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이고 찬양의 대상이다. 창조주이시자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이자 종이자 자녀인 우리들에게 경배와 찬양을 받기 원하신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함께 그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아달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면 24장로와 천군천사들이 ‘거룩하다’를 끝없이 외친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달라는 기도를 일상의 삶에서 쉬지 않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기도가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혼자 중얼거리는 독백이거나 주문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나라는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한자어로 천국이라고 말한다. 천국은 우주의 어느 한쪽에 건설된 영토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있다고 하셨고, 성경은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셨다.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셔서,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목표이고 목적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다가 이 땅을 떠나면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된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며 숨이 막히지 않는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셨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임을 모르는 크리스천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을 만드신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누구를 통해 이루시는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를 통해 이루신다. 그렇다면 위의 내용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역의 종이 되어 요긴하게 사용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일용할 양식은 오늘 필요한 양식이다. 즉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를 함축하고 있으며, 또한 영혼이 사는 데 필요한 영의 양식도 의미하고 있다. 즉 우리는 육체와 영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의 세속적인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악한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바로 생계에 필요한 육체의 양식으로 배워왔고 필자도 처음에는 그러게 생각했다. 그러나 위의 구절을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계에 필요한 육체의 양식이 필요한 것을 알고 더 이상 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위의 일용할 양식은 생계에 필요한 육체의 양식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의미하고 있다. 영혼의 양식은 영혼의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주는 하나님의 양식으로, 기도와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인들은 성실하게 교회마당을 밟으면서 영혼이 건조하고 냉랭한 이유는 영혼의 양식을 얻어 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의 양식을 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할 때마다 오늘 필요한 영혼의 양식을 날마다 구하라고 명령하신 이유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인을 가까이 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무런 죄가 없으신 외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참혹한 형벌을 받게 하신 이유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거라고 약속해주셨다. 그래서 당신은 자복하고 회개하여서 죄를 용서받으셨는가? 오홋 그렇다고? 그러나 당신은 기도가 끝나고 일어나면, 다시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다.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망라하는 말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죄를 잉태하고 태어났으며, 죄를 좋아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죄성이 뼈에 새겨져 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고 성경은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죄를 깨닫고 고백하며 전심으로 회개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며 살아가고 계신가?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구원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에, 죄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조차 싫어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죄에 대한 가르침이 사라지고, 거꾸로 죄에 대한 경각심도 무뎌지고 죄를 지으면서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생각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천국에 들어갈 확률은 결코 없다. 그뿐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기 전에, 기도하는 자에게 잘못한 이들의 용서를 의무적인 조건으로 걸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죄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사랑과 자비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의 총체이다. 하나님은 사랑이기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자녀들을 자녀라고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른 이들의 죄를 용서하는 사람들만을 자녀로 여기셔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시험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페이라죠’이며, ‘시험에 든다’는 뜻은 ‘죄에 걸려 넘어진다’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그래서 사탄의 다른 이름으로, ‘시험하는 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시험은 죄와 동일한 뜻이며, 시험에 든다는 의미는 죄에 걸려 넘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달라는 것은, 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죄와 싸워 이길 힘을 달라는 기도이다. 우리의 DNA안에는 죄를 좋아하고 죄를 추구하는 죄성이 새겨져 있으며, 천사와 동급의 엄청난 영적 능력이 있는 귀신들은 죄의 덫을 놓고 사람들이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과 의지와 지혜로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 죄와 싸워 이길 힘을 달라고 날마다 쉬지 않고 S.O.S를 쳐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고 연약하여서 죄에 걸려 넘어지고 죄악에 빠지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악은 헬라어로 ‘호 포메론’이란 단어인데, ‘죄악’ 혹은 ‘악한 영’ 두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죄악에 빠진 상태는 귀신에게 사로잡혀 지배당하고 있다는 뜻과 동일하다. 그래서 죄에 빠진 사람은 불행한 삶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된다. 이들은 필시 생명과 영혼을 사냥당해서 지옥에 던져질 운명이다. 그러므로 죄에 빠지게 되었다면, 즉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악한 영의 손아귀에서 건져줄 능력이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 유일하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성경의 핵심적인 사항을 압축시킨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날마다 이 주기도문을 한 구절씩 끄집어 내어 묵상하며, 깊은 깨달음으로 음미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셔서 동행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주기도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바라시는 핵심사항이 빼곡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평안하고 형통한 삶은 물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한 제자를 꿈꾸는 당신이라면, 이 주기도문을 전가의 보도처럼 아끼고 날마다 쉬지 않고 묵상하며 기도하시며 살아가시길 바란다.
이상이 바로 예수님이 기도하신 태도이며 기도의 내용이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성실하게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스승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스승이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의 방식을 본받고 따라하지 않는다면 패역한 제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당신의 신앙생활이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살아왔던 이유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예수님의 기도를 벤치마킹해서 성경의 위인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영혼구원에 요긴하게 사용되다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행복과 기쁨의 삶을 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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