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다림과 만남의 미학을 되풀이 한다. 그러나 너무 짧은 기다림은 천박한 만남을 낳기도 한다. 그런 만남은 미학을 낳지 못하고 다시 의미 없는 작별을 고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다려야 할 때 우리는 서두르지 말고 기다림의 여유를 만들고 그리움의 꽃망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만남이 참으로 의미를 가지는 관계를 낳기 위해서이다.
나는 두 해전 쉼에 대한 의미 있는 시 한편을 찾다가 정유찬 시인의 시 ‘쉼표이고 싶다’를 만난 일이 있다. “쉼표처럼 휴식을 주고 싶다/힘들고 지칠 때마다 어김없이/당신 옆에 찍히는 쉼표--”이렇게 시작되는 시가 당시 지쳐 있던 내게 적지 않은 쉼과 회복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곧바로 그 다음 주일 ‘쉼’을 주제로 한 설교를 하면서 그의 시를 교우들에게 소개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정유찬 시인의 부친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시인도 나의 설교에서 자신의 시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전갈을 해 온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그를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위해 작은 소원을 갖고 기도하게 되었다. 나는 당장 그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기도하면서 그를 만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한 주간 전에 나는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기도로 만난 만남이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소중한 만남이었다. 시인은 이 만남 후에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한 편의 시를 다시 보내 주었다. 이 시의 제목은 ‘낙타’이다. “혹시 저를 기다리나요/저는 모가지가 길고요/등에는 혹이 있어요/엎드려서 네 발로/가느다란 네 발로/기웃 기웃 걸어요.--불타는 모래언덕 너머/건조한 사막을 지나/당신이 거기 있다면/저를 기다리세요.---당신을 등에 태우고/오아시스로 갈게요./저는 조금만 먹고요/울지 않아요.”
그리고 난 지금 다시 이 시의 의미를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를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과의 만남뿐 아닌 모든 만남을 이런 기다림과 만남의 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소원하게 되었다. 건조한 사막을 지나는 우리 모두가 낙타처럼 오아시스로 향하는 발걸음이 되었으면 한다.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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