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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파와 교단 - 로마가톨릭교회 1.

Joyfule 2008. 2. 28. 00:26

로마가톨릭교회


로마교황을 정점(頂點)으로 하는 그리스도교회. 그리스도교회에서는 동방정교회·프로테스탄트교회와 구별하여 사용된다. 가톨릭이란 말은 <보편적> <공동적> <일반적>이라는 의미로서, 스스로를 <유일하고, 성스럽고, 공변되며, 사도(使徒)로부터 전래된 교회(니케아信經·콘스탄티노플信經)>라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교회가 전 인류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기관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가톨릭교회(ekklesia katholikē)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10년경에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그나티오스가 스미르나교회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였다. 2005년 현재 가톨릭교회는 전세계에 약 11억 명의 신도를 가진 최대의 공변된 교회이다.


가톨릭교회의 역사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를 그리스도 즉 약속의 메시아, 구세주라고 선교(宣敎)한 12사도와 바울의 활동으로 로마에 전파되었으며, 무서운 박해 뒤에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그리스도교 개종과 313년 밀라노칙령에 의해 로마제국에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뒤 가톨릭교회는 동·서로마제국 안에서 서로 다르게 발전했다. 동방교회에서는 총대주교구(總大主敎區)가 된 콘스탄티노플·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전례(典禮;공적인 예배집행체계)를 가져, 어떤 의미에서 자율성과 독자성을 지닌 여러 교회가 생겨났다.

이와 같은 다양성을 지닌 동방교회의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서방교회에서는 로마교황을 중심으로 공통의 로마전례를 가진 교회조직이 구축되었다. 그러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전례나 언어에 따른 표현의 차이는 있어도 5세기쯤까지는 똑같은 하나의 사도 전래의 가톨릭교회로서의 일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325년 니케아공의회(公議會) 및 381년 콘스탄티노플공의회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교의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431년 에페수스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파를 배척하고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그리스도교 단성론(單性論)을 배척함으로써 동방교회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그 사이에 교황 레오 1세는 로마의 주교가 전(全)가톨릭교회에 대해서 수위권(首位權)이 있다는 것을 <마태복음(16:18)> 등을 기초로 하여 분명히 하였다.

이것은 동방교회의 의식과는 다른 것으로, 동방교회에서는 로마의 주교를 동등한 주교들 중에서 제1위인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화상파괴논쟁(聖畵像破壞論爭),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포시우스의 임면(任免)을 중심으로 한 논쟁, 삼위일체의 교의에서 성령(聖靈)은 성부(聖父)가 아니라 성자(聖子)를 통해서 온다는 단수발생론(單數發生論)의 동방교회를 무시하여, 서방교회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양쪽에서 나온다고 하는 복수발생론의 라틴어 <필리오케(Filioque)>라는 표현을 신경(信經)에 덧붙인 필리오케 논쟁 등이 겹쳐 1054년 동서의 교회는 분열되었다. 로마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동방교회는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동방교회의 전례를 유지한 채 로마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여 가톨릭이 된 교회도 있지만 동방교회의 대체적인 경향은 그대로였다.

한편 16세기의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신학·전례·신앙생활·교회행정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것이었으며, 특히 직집적인 계기는 1517년 M. 루터가 제기한 면죄부논쟁(免罪符論爭)이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함께 루터의 개혁운동은 독일과 스위스 지방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 그의 신봉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은 하나의 통일된 프로테스탄트교회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많은 교회가 각각의 신앙에 따라 분립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여러 프로테스탄트교회와 가톨릭교회의 신앙내용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구원(원죄를 포함하는 모든 죄로부터의 해방) 및 성서·성전(聖傳)·성사(聖事)·주교·교회 등에 관한 차이는 분명하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여러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 가톨릭교회는 1545~1563년 트리엔트공의회를 개최하여 교의(敎義)와 조직 및 제도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반종교개혁이라 불린 것이며 근대가톨릭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16세기 이후 유럽의 통일이 무너지고 근대국가가 탄생하자 가톨릭교회는 이들 국가와 정교조약(政敎條約)을 체결하였다. 1929년 이탈리아 정부와 라테란조약을 체결하였으며, 교황을 수장(首長)으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 바티칸시국(市國)이 탄생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때 교회는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종교나 인종 또는 국적에 관계없이 도와주었으며, 전후에는 평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열어 교회의 현대화와 교회의 일치 등에 대해 토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