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 (1) - 안영복
들어가는 말 ---
크리스천의 지상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도와 선교이다. 그러나 전도와 선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영성 발달(spirituality development)이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3:18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명령한다. 여기 “자라가라”는 명령은 바로 영성발달을 촉구하는 명령이다. 왜 이런 명령을 하였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성품은 저절로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잡초는 저절로 자라지만, 곡식이나 채소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 것과 같다.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크리스천들을 향하여 영적으로 “자라가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영성 발달은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아주 중대한 명령임이 분명하다.
전도와 선교는 크리스천 개개인과 교회가 밖을 향하여 수행해야할 외적 차원의 명령이고, 영성발달은 크리스천 개개인과 교회가 내부적으로 수행해야할 내적 차원의 명령이다. 모든 크리스천은 이 두가지 명령을 동시에 받고 있다. 교회는 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양적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영성발달을 통하여 질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심지어 교회 문제들을 세상 법정으로 끌고가는 일이 허다하다. 왜 그런가? 성도들이 윤리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수많은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윤리적인 가르침을 주어왔고 지금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윤리를 알지만 그러한 윤리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연고이다.
그러므로 영성발달은 크리스천이 세상에 빛을 발하면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영성발달은 오늘 모든 크리스천 개개인과 교회 전체가 힘써야할 지상 과제임이 분명하다.
본 강의는 권택조 교수의 <영성 발달>이란 책을 주요 자료로 하여, 영성이 무엇인가 그 개념을 밝히고, 그러한 개념을 근거로하여 영성발달의 모델을 제시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성 발달의 모델을 각 개인과 교회의 삶 속에 적용할 때, 교회와 가정 및 사회 속에서 성숙한 크리스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본다.
제 1장 영성(Spirituality)의 개념
A.영성에 대한 다각적 고찰
거의 모든 종교는 영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종교마다 영성의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연구하려는 영성은 기독교적 영성이다.
1.<영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
기독교의 영성은 구약성경의 유대주의적 토양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바로 유대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영성은, 자연을 관찰하며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명상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 속에서 태어나고 발달한 것이다.
교회사적 면에서 “영성”(spirituality)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영국교회에서 인데, 영성을 성직자단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었다. 18세기 이전까지는 <영성>과 동일한 성경적 용어를 발견치 못하였고 그 개념을 신학적으로 정립하지도 못하였다. 20세기에 와서야 학자들은 영성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되었는데, 영성을 한 인간 전체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영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는가를 교회사적으로
약간 살펴보면 이러하다 ----
(1)오리겐(Origen, 185-254)은 “순교야말로 영성발달의 최고봉”이라고 확신하였다. 이렇게 확신한 것은, 자기의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는 모습 속에서 영성발달의 극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겐과 같은 교대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동방교회의 영성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인간도 신성화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즉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령님의 역사로 神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영성 발달로 보았다.
(2)어거스틴(Augustine, 354-403)은 인간이 신성화된다는 동방교회의 교리를 반대한 자로서, 인간은 겸허한 자세로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고백을 통하여 영성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3)그레고리(Gregory the Great, 540-604)는 중세 초기의 영성발달의 아버지라 불리운 자로서, 수도원 제도를 체계화시키고,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4)12세기와 13세기는 영성이나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기이었다. 수도하는 수도승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많은 영적인 글들과 문학 작품들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는 신학의 권좌가 수도원에서 대학으로 옮겨졌다. 수도원을 중심한 명상적 영성에서 대학을 중심으로하는 학문적 영성으로 옮겨짐으로서, 명상 중심의 영성과 학문 중심의 신학적 영성이 서로 합쳐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신학이 대학을 중심으로하여 학문적 수련의 분야로 발달해감에 따라, 신학과 영성이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이같은 분리는 중세말에 와서 절정에 이르게 되었고, 근대에 접어들면서는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기에 심리학이 영적 명상의 분야에 접목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기 이전이나 전환기에 수도자들은 영성적 신학 혹은 신학적 영성을 시도하였다.
문예부흥이 일어나기 직전에 유럽에는 이탈리아의 은둔자들로 구성된 <어거스틴 수도회>가 있었는데, 이 수도회는 성 어거스틴의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규칙은 성경에 뿌리를 둔 영적 삶의 규범으로 카리타스(caritas)라는 개념에 기준을 두었는데, 카리타스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5)14세기에서 15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르네상스(Renaissance) 곧 인문주의운동은, 영성과 관계없는 비종교적 색채가 짙은 운동같지만, 사실은 기독교적 영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인문주의 교육의 방향이 인식론과 인류학 쪽으로 많이 발달하게 되었고, 따라서 영성의 성격도 전(前) 세기처럼 지나치게 知性으로 치우치지 않고 복음주의적 영성을 많이 포함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운동가들은, 기독교적 영성을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성 속에서 보았다.
(6)종교개혁시대의 영성은 루터와 칼빈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루터는 칭의의 수단으로 믿음을 강조하였는데, 그렇다고 그가 선행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크신 선물인 이상, 그런 선물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루터는 선행의 대상은 이웃이 필요로하는 것들이라고 강조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선행의 최고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루터의 영성에 대한 개념은 타자중심적인 삶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의 영성은 문예부흥의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 체험에서 영향 받아 이루어졌다고 본다. 당시 로마 카토릭교회가 인간은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었으며, 칼빈의 영성 운동은 이같은 당시의 부패한 종교사회를 재건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칼빈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메움에 있어, 인간성의 제한 때문에 불가불 하나님 편에서의 우선적인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인간이 믿음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믿음에 따른 행동이야말로 신앙의 궁극적 척도가 된다고 강조하였다. 칼빈신학의 초점은, 신자는 수도원에서 명상만 하고 실생활은 소극적 부정적 태도를 취하지 말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데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칼빈의 영성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라는 입장에 섰다.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영국 국교인 성공회(Anglican Church)의 목사로 살다가 죽었지만, 사실은 감리교의 창시자이다. 웨슬리는 그의 형제 찰스(Charles)와 더불어 찬송가를 개발하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속회제도를 개발하였다. 그는 영성 발달을 위하여 설교와 찬송 그리고 교육을 중요시하였다.
휫필드(Whitefield, 1714-1770)와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1703-1758)는 다같이 교육을 통한 영성 발달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이다.
아우만(Aumann)에 의하면, 기독교 역사의 전 과정을 통하여 공통적으로 강조된 크리스천의 삶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데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영성은, 神學이라는 학문 속에만 갇혀 있어서도 안되고, 반면 신학을 멀리 떠난 채, 개개인의 일상생활 속에만 존재하는 개인적 신비주의의 영역에 국한되어서도 안된다. 기독교 2000년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영성은, 말씀과 실천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발달하였다. 즉 성경에 기반을 둔 신학적 이론과 주장이 크리스천의 삶 속에 절대적 가치로 심어질 때,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여 개개인의 생활 속에서 기독교 윤리가 실천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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