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목회칼럼 112. 연합하는 교회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도서 4:11)
팔레스타인의 사막지대는 밤이면 춥습니다.
이 사막에서 잠을 잘 때는 몹시 춥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료와 함께 잠을 자면 서로 온기로 인하여 따뜻하게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두 사람이 함께 하면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썰렁한 방에 혼자 들어가 보셨습니까?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일을 하는데 마음이 통하는 사람,
함께 협력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렇게 고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두 사람, 세 사람이 함께 할 때 따뜻합니다.
한 덩이의 숫불만이 난로 바닥에 있다고 한다면
온기를 만드는데 별로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숯불 또한 쉽게 꺼질 것입니다.
그러나 숯불 위에 숯이 모이고 그 위에 또 숯이 모여질 때
불은 화력을 내게 되고 마침내 추위를 녹이는 에너지가 됩니다.
교회는 함께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됩니다.
함께 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힘을 얻습니다.
둘보다는 셋, 셋보다는 넷, 넷보다는 다섯....
예배시간에 더 많은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면 참으로 따뜻하고 힘이 됩니다.
어떤 일이든 함께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따뜻하고 힘이 납니다.
함께 할 때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함께 할 때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함께 살게 됩니다.
공동체가 살게 됩니다.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
한사람보다 두 사람이 강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흩어진 개인주의는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해도 적고 약한 것입니다.
시험과 유혹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이는 다윗의 예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한순간 게을렀습니다.
군사들은 전선에 나아가 싸움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왕궁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가하다보니 낮잠을 자게 되었고 그러한 여유 속에서 사단이 틈타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다윗의 모습을 살펴보면
일정기간동안 그가 홀로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절친한 사람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쟁터로 나가고 그와 함께 일할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홀로 있다 보니 넘어지게 된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지나치게 개인적일 때 사단이 틈을 탑니다.
그리고 교회가 연합하지 못합니다. 사단이 틈타서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삼겹줄이 된다면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삼겹줄’이란 단 세 겹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3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연합의 완전함, 견고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개인적이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한 사람입니다.
성도가 연합하고 하나 될 때, 시험과 유혹을 이기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 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서로 섬기며 하나 된다면
그 삶은 승리의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옥스포드대학에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함께
소그룹 운동을 벌여 서로 영적으로 격려해 주는 동시에 죄에 물들지 않도록
서로를 영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주는 운동을 벌렸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영적인 부흥이 그 학교 안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향악과 같은 모임입니다.
하나 되고 연합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바램이요, 뜻입니다.
북가주 '레드우드'라는 공원에 가보셨습니까?
레드우드 공원의 토질은 사막토질입니다.
하지만 공원내에는 우람한 레드우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 토질에
어떻게 레드우드 공원과 같은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물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나무가 함께 자라면서 바닥엔 늘 그늘이 지고
습기의 증발이 억제되어 나무가 죽지 않고 숲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울창했던 밀림의 나무들도 한 그루씩 자꾸 베어지면,
앞서의 경우와는 반대로 점차 땅이 보습 기능을 잃고 메마르게 되어
나머지 나무들도 전부 말라 죽고 맙니다.
이처럼 서로 도우며 공생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인데
이 질서가 이기주의에 의해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멸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함께 하는 곳입니다.
함께 하는 공동체의 마음은 교회를 위대하게,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