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 수필지 2015년 2-3월호에 실린 신작수필입니다.
꽃 (프리지아) - 고정숙
꽃들 중에 예쁘지 않은 꽃이 있으랴마는 특히 좋아하는 꽃을 꼽으라면 노랗고 향기가 은은하고도 황홀하기까지 하는 프리지아를 나는 좋아한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후리지아(Freesia)라고도 하고 프리지아라고 불리는 이 꽃의 꽃말은 순결, 순진, 천진난만이라고 한다.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개나리와 더불어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교문 앞에서 프리지아를 많이 팔고 있는데 꽃말이 ‘당신의 시작을 응원해, 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리지아는 황, 백, 적색의 여러 색깔의 꽃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은 노란색이다.
이른 봄 화원을 지나다가 코끝으로 아름다운향기가 스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노란 프리지아 꽃이 나와 있다. 이 꽃향기를 맡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내 아이들 어렸을 적에 엄마가 좋아한다고 4월 내 생일날이면 샛노란 이 꽃 한 다발을 선물해 주곤 했다. 이 향기를 맡으면서 아이들하고 행복해 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 얼마 전에는 힘든 일을 겪고 있는 후배에게 프리지아 꽃 한 다발을 건네주었더니 무척 좋아하고 즐거워해서 한 순간이나마 위로가 되었나 싶어 보람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수 년 전 이 꽃에 대한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어느 총각선생님이 초임발령을 받아 갔던 모 여고 에서의 일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니 교탁 위에 못 보던 노란 꽃이 꽃병에 꽂혀 있어서 ‘이게 무슨 꽃이지?’ 하고 물었더니 브리지아라고 해서 "이 꽃이 브리지아라고? " 했더니 ‘선생님 브리지아가 아니라 브래지어라니까요.’ 하고 모두들 와하하 웃음보를 터트렸다. 꽃 이름이 주는 어감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까지 꽃 이름에 대해서 문외한인 그는 프리지아 어감으로 유추해낸 여학생들의 그 짓궂은 말장난 때문에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던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프리지아 꽃말의 전설 또한 애틋한 사연이 있다. 숲의 요정인 프리지아는 숲속에서 우연히 보게 된 나르시소스라는 미소년을 짝사랑 하지만,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프리지아는 자신의 사랑은 고백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자만심이 강한 나르시소스는 프리지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르시소스는 샘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한순간에 반해버려 물속으로 들어가 빠져죽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본 프리지아는 괴로워하면서 그가 죽은 샘에 자신도 몸을 던져 따라서 죽어버렸다. 이를 지켜본 하늘의 신이 나르시소스는 수선화가 되게 해서 꽃말은 자기애, 자존심이라 전해지고 프리지아는 그 순정에 크게 감동하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만들어주고 향기까지 덤으로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이 천진난만함, 순진, 깨끗한 향기로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프리지아를 좋아한다고 해서 깨끗하고 순진하고 천진난만하게 살아 온 것도 아니지만 ‘당신의 시작을 응원해, 라는 꽃말의 의미를 새겨보고 싶다. 수 년 동안 나는 이런저런 일에 묶여 글도 쓰지도 못하고 지내오다가 이제 다시 시작하는 첫 마음으로 수필 반을 들락거리고 있다. 돌아오는 내 생일에는 평생 아내에게 꽃 한 송이 사 주지 못하는 무심한 남편은 재껴두고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서 샛노란 프리지아 꽃 한 다발을 받고 싶다. “엄마의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 라는 의미를 담아서..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고료 이백원(原稿料 二百圓) - 강경애 (0) | 2015.02.28 |
---|---|
후문 - 유혜자 (0) | 2015.02.27 |
끝 - 박시윤 (0) | 2015.02.25 |
짧아서 더 슬펐던 아버지의 두 번 웃음 - 구효서 (0) | 2015.02.16 |
충무김밥 아지매 - 김미옥 (0) | 2015.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