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우리 일터가 복 받는다!
말씀 : 창 39:2-5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묵상 :
말씀 묵상 : ‘복’을 좋아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벽이나 대문, 심지어 밥상과 이불, 베개에까지 복(福)이라는 글자를 새겨놓습니다. 복 좋아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 혹은 동양 사람들만인가 보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서양 사람들도 블레싱을 참 좋아합니다. 서양인들 각종 인사에 보면 ‘happy'라는 단어가 남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일에도, 결혼에도, 새해에도, 부활절에도 언제나 만나면 행복하라고 인사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빌면서 갓 블레스 유라고 인사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바라는 복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창 1:27-28). 아브라함에게도 세상의 복이 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세상에서 복이 되는 것이 언약 백성의 사명입니다. 바로 이런 복을 요셉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직업인들이 힘든 상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일터 환경의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상황을 탓하고 사람들을 비난하곤 합니다. 요셉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형제들에게 팔려 타향에 와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또 그의 업무를 보면 본문에 나타나는 일만으로도 업무량이 상당했을 것입니다. 5절에 보니 꽤 규모가 큰 살림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애굽 친위대장 보디발 집의 “집안일과 밭일”을, 요셉이 했습니다. 그 집 살림을 다 책임지고 했다는 뜻입니다. 노예들의 노동력을 활용해서 농사를 짓는 일이 요셉의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또한 집안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고 그 집안의 모든 노예들을 관리하는 일도 요셉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가정 총무”라는 요셉의 직함이 그의 업무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중요한 일이 요셉의 업무였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나이도 많지 않은 노예로서 동료 노예들의 시기와 견제도 심했을 것입니다. 그런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또 주인의 아내까지 젊고 준수한 요셉을 잔뜩 눈독들이며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하는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고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표현을 창세기 기자가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2-3절). 3절에 보니까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그의 눈으로 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터의 관점으로 보면 성과와 실적으로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주인 보디발이 볼 때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가시적으로 일의 성과가 보였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이 보디발 집의 책임을 맡은 이후에 노예들이 도망가는 숫자가 줄어들었고 밭에서 농사를 지은 곡물의 생산량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창고에 보관했다가 판매를 했는데 그 매출액이 전보다 월등하게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요셉이 형통하여 성공한 모습이 보디발의 눈에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은 자기 집안의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보디발의 집은 복 받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보디발은 살육하며 전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집안의 노예를 유혹하는 요사스러운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신 이유는 바로 요셉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결코 녹녹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우리 일터에서 그야말로 ‘복덩이’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때문에 우리 회사가 복 받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을 복되게 하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우리가 이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 크리스천 직업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실천거리 : 복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잘 압니다. 하지만 평범하고 혹은 평균 이하의 일터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일하겠습니다. 제가 우리 일터를 복되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셉처럼 저의 맡은 분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성실하고 탁월하겠습니다. 성실하게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일터의기도 : 저 때문에 제가 일하는 곳이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일터의 복덩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나님의 사람답게 제대로 일하게 도와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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