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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의 민심 불감증

Joyfule 2006. 7. 1. 18:38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새는 황혼녘에 날개를 펴고 난다고 했다(헤겔). 황혼은 낮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마침내 뒤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많은 논객이 황혼을 맞은 미네르바의 부엉새처럼 지방선거 결과를 논했다. 시체해부(Postmortem) 방식으로 여당 참패의 원인을 분석한 그들의 컨센서스는 지방선거 결과는 노무현대통령의 386 정권의 실정(失政)에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선거 한두 번 진다고 역사 안 바뀐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추진해 온 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노 대통령의 민심 불감증은 놀랍다. 그의 비서실장과 여당 의장을 지낸 정치인까지 지방선거 결과를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탄핵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민심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내려고 한다. 실정의 조연은 사퇴하고 주연은 선거 참패가 대수냐는 배짱이다.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는 '책임은 내게 있다(The buck stops here)'고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트루먼과 노 대통령의 책임의식은 반세기의 시차만큼 대조적이다.

"선거 한두 번 진다고 역사 안 바뀐다"는 노 대통령의 주장은 그가 개념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보인다. 일반론으로 말해 보자. 정부.여당이 전국적인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것은 정부가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일반론을 노무현 정부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노 대통령의 386 정부는 국민을 20%의 가진 자와 80%의 못 가진 자로 편을 갈라 가진 자들로부터 성취 동기를 박탈하여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기업이 투자를 꺼리니 80%의 못 가진 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들어 그들의 삶은 더욱 고단해졌다. 탈(脫)권위주의를 한다면서 권위를 파괴하고 가치기준을 뒤흔들어 놓아 사회가 극단적인 포스트모던과 몰(沒)가치의 풍조로 흘렀다. 흉악범까지 자신들의 범죄를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한 고상한 저항으로 미화하는 세상이 됐다. 사회의 저변에 냉소주의와 도덕적 허무주의가 쌓인 결과다. 한마디로 노무현 정부는 15년 전 소련.동유럽에서 용도 폐기된 낡은 이념을 갖고 시대착오적인 이념정치(Ideocracy)를 하다가 국민으로부터 '빠떼루'를 받은 것이다. 정부.여당이 선거에 두 번 참패하는 사태를 가정하면 나라 경제는 거덜나고 국민생활은 황폐화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래도 역사는 안 바뀐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가 외교.안보 쪽에서 드러낸 난맥상은 내정의 실패 못지않다. 한.미관계와 한.일관계가 최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가. 노 대통령은 북한이 방어용으로 핵개발을 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북핵에 관한 한.미 공조에 충격을 줬다. 북한의 핵무장이 한국의 안보에 줄 치명적인 위협을 과소평가하는 노 대통령의 인식은 위험하다. 미국의 불신을 사는 경솔한 발언으로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에 제동을 거는 데 활용할 지렛대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우리끼리'의 민족자주 노선이라는 주문(呪文)을 너무 자주 왼다. 그는 튼튼한 한.미관계가 북한을 움직이는 가장 유효한 지렛대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 같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필리핀의 마르코스를 염두에 두고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한 임기에 정권이 망하고 두 임기에 나라가 망한다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은 필리핀이 아니고 한국 국민은 깨어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선거 참패의 책임은 열린우리당과 정동영에게 떠넘기고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국민을 현혹시키면서 건전한 이념 아닌 이념정치로 지난 3년 반의 정책을 고집한다면 남은 임기 1년 반이라도 나라를 더욱 황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 출처 : 김영희(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