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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재(盧炳在) /노병인(盧炳仁) 장로교 집사. 순교자.

Joyfule 2018. 10. 6. 13:59

 


노병인(盧炳仁) 장로교 집사. 순교자.

(1907 - 1950)
전남 나주군 공산면에서 출생하였다. 형님인 노병재집사를 따라 영광군 연산으로 이주하였다.

함평출신인 이선임과 결혼하였으며, 이들 부부는 염산교회를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선임은 믿음이 돈독하여 염산교회의 집사의 직분을 맡았으며, 이 가정도 형님 노병재 집의 가족과 같이 장엄한 순교를 하였다.

장남인 노용길은 당시 광주 숭일중학교에 다녔다. 9.28수복에 기삼도, 사촌형인 노순기등과 같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다가 공산군에 불잡혀 장엄한 순교를 하였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부모가 죽임을 당하였고 당시 목포성경학교를 다니던 노원례.노용남. 노정자. 노신자등 일가족 7명이 염산교회 밑에 있는 수문에서 찬송을 부르면서 참살당하였다.



노병재(盧炳在) 장로교 집사. 순교자.

(1904 - 1950)
전남 나주군 공산면에서 출생하였다. 해방전에 나주에서 영광군 염산면으로 이주하였으며, 8.15해방을 맞이하면서 염산교회를 출석하였다.

조승계목사가 인도하던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고 철저하게 기도생활을 하게 되었다. 집사로 임명을 받고 부인 장일영집사와 같이 교회 봉사에 전념하였다. 6.25사변때 공산군의 위협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아니하고 지켜 오다가 9.28수복때 국군이 유엔군과 같이 영광읍을 거쳐서 법성포를 지나간 일이 있었다. 이때 노병재 집사의 둘째 아들 노순기와 사촌간이 노병인 집사의 아들 노용길, 목포성경학교 학생인 기삼도등이 태극기를 만들어 국군을 환영하고 돌아와서 염산면 봉남리 도설마을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른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 만세사건으로 기삼도 등 일행이 1950년 10월 7일 교회 밑의 수문에서 순교를 당하였으며 친동생인 노병인 집사가족, 사촌간인 노병규 집사 가족도 함께 순교당하였다.

이때 어머니는 65세의 나이였으며 노오차, 노육차. 등 8식구가 차례로 순교하였다. 특히 노병재 집사 부부는 공산군에 의해 묶이어 교회 바로 밑에 있는 수문에 던짐을 당했는데 이때 이들 두 부부는 새끼줄을 끊고 바다속에서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찬송을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

당시 목포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아들 노형기만 살아 남았고 노형기의 사위인 정기복은 현재 서울 약수교회 전도사로 사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