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다리 - 박해람

Joyfule 2006. 3. 26. 04:30
      다리 - 박해람 길의 사이에 다리가 있다 원래 이것들은 끊어진 곳에서 새살처럼 돋아난다 새살은 상처에서 생겨난다지만 다리에게는 양쪽의 세상이 다 입구다 그 입구가 상처의 문이다 다리 위로 흐르는 것들보다 밑으로 흐르는 것들이 더 빠르다 여기에 세월은 없다 막히는 법이 없는 길의 입구 시작과 끝이 한 몸에 있다 간혹 저승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늘 다리가 등장한다 왕복할 수 있는 곳에 다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언제고 돌아올 수 있다는 증거이고, 다시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밑으로 흐르는 시간에는 왕복이 없다 내가 관여하지 않는 시간들이다 건너가지 않으면 돌아 올 수 없는 다리 연골에 가득 들어 있는 뻣뻣한 칼슘 덩어리 같은 다리 더 이상 구부러지지도 않으면서 몸에서 떼어버릴 수도 없는 길의 뼈마디. 방향도 없으면서 그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다리를 건너 다녔으나 또 한, 세상의 가장 빠른 지름길인 다리를 여태 건너고 있다 저 쪽에서 나를 닮은 딸아이가 건너오는 것을 보면서 잠시 오래 서서 같이 쉬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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