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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님의 양인가, 독사의 새끼인가?

Joyfule 2019. 10. 23. 04:23



 
    당신은 예수님의 양인가, 독사의 새끼인가?



새 신자가 교회에 들어오면 예수님의 친근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는 교육을 받는다. 교회의 벽화에서 예수님은 늘 어린 양을 품에 안고 정감이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사랑과 용서밖에 모르는 분처럼 알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관대하고 자비로우신 게 아니다.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며 불쌍히 여겨달라는 태도를 보인 양들에게 한해서이다. 거꾸로 교만하고 자기 의에 가득 차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백성들에게는 가혹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이셨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예수님의 모습을 지워버리고 , 사랑만 베푸시는 분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죄를 밥 먹듯이 짓고 회개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에 항상 들어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하고 싶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23;15)

 

위의 구절에서 보인 예수님은 당신이 평소에 보아왔던 사랑이 넘쳐나시는 분이 아니다. 독사의 새끼라는 저주를 퍼부으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거라는 폭언을 날리고 계시다. 그 대상은 유대교지도자였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날리신 일갈이다. 이들이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사실 그들은 우리네 교회지도자나 교인보다 더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하였다. 그들은 당시 구약성경을 암송하여 백성들에게 가르쳤고, 안식일준수와 십일조는 물론 육백여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러나 예수님이 책망하신 이유는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부족했다고 하신 게 아니다. 종교행위를 하는 속내와 동기, 목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아서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자기만족과 자기 의를 내세우던 종교주의자(율법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과 다른가?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지도자들과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목사들은 목회성공을 하고 싶은 속내를 감추지 않고, 교인들도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살고 싶은 목적을 드러내며 교회마당을 밟고 있다. 이런 태도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네 목회자와 교인들이 기대하는 대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시겠는가? 독사의 새끼이며 뱀들의 자식이라는 독설을 퍼부으시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책망하신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이 이들뿐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던 초대교회 교인들이었다. 예수님은 밧모섬의 요한사도에게 나타나서, 당시 7개 초대교회 중에 5개 교회를 향해서 책망과 경고를 날리셨다. 지금 우리네 교회 중에 어떤 교회도 이들의 교회보다 예수님의 명령을 잘 지키는 교회가 있겠는가? 그런 그들조차 예수님의 책망에서 피하지 못했으며, 회개하고 고치지 않으며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책망이나 경고를 듣지 못한다. 책망 받을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귀가 가려지고 눈이 어두워졌으며 마음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책망을 옮겨보겠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4,5)

 

위의 구절은 에베소교회에게 하신 책망으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셨다. 우리네 교회도 처음에는 뜨겁던 신앙의 열정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 모든 산업이 피폐해져서,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 밤이 새도록 기도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도자리에 교인들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네 교회도 처음 사랑을 되찾지 않으면 예수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4~16)

 

위의구절은 버가모교회에게 하신 말씀으로, 발람의 행위를 따라서 행음하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발람은 모압의 점술가로서 발락왕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하였으나 하나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후에 모압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 안에도 음란과 불륜이 창궐하지만 회개하고 통곡하지 않는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이 싸우겠다고 선포하신다. 예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은 독사의 새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0,21)

 

위의 구절은 두아디라교회에게 하신 말씀으로, 교회 내에 성경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아전인수식으로 가르치는 지도자를 용납하는 죄와 더불어 음란과 행음의 죄를 통렬하게 책망하고 계시다. 이 시대의 우리네 교회도 교단신학자의 교리를 성경말씀보다 앞세우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들은 성경말씀을 교단의 교리를 뒷받침해주는 짜깁기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3:1,2)

 

위의 말씀은 사데교회에개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온전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책망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처럼 온전하게 행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을 교회에서 들어볼 수가 없다. 이는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온전하게 해주셔야 가능하지만, 성령의 사람을 볼 수도 훈련시키지도 못하는 우리네 교회에 그림의 떡인 말씀에 불과하다.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한 우리네 교회가 당할 일이 불 보듯 환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3:15~18)

 

마지막으로, 위의 말씀을 라오디게아교회에 하신 경고이다. 믿음이 뜨겁지 않는 자들은 토하여 내겠다는 서슬이 퍼런 경고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믿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교회에 모여 종교행위를 하고나서 교제를 즐기며 재미로 다니는 이들이 허다하다. 기도소리가 사라지고 마음을 찢는 회개가 증발된 우리네 교회지도자와 교인들이 당할 일들이 눈에 선하다. 그러므로 자신을 날카롭게 살펴보라. 예수님의 양인지, 아니면 독사의 새끼인지 말이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영접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에게도 서슬이 퍼런 경고가 선포되었는데, 우리네 교회는 영적 잠에 취해 일어날 줄을 모르니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