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은 만족스러운가?
당신은 지금의 삶이 더 없이 만족하신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잊고 있었던 자신의 삶과 영혼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는 준비해둔 대답을 하고 있다. “그래 아마 그럴 거야”라고 말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어려움과 고난은 믿음을 향상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기 때문일 거야.”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만족하지 않다고 실토해버리면, “지금까지 신앙 생활한 것이 무엇이지? 죄다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잖아“ 그리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CCM을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른다.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구절처럼,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놓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과 성관 없는 자신의 삶과 영혼의 상태를 인정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묻고 싶다. 그래서 당신의 삶과 영혼은 행복해지셨느냐고 말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 사람들과 진배없이 건조하고 냉랭한 영혼으로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고 있지만, 교회에 오면 행복한 코스프레를 하고 웃으면서 떠들다가, 집에 돌아가면 건조한 영혼을 잊고 싶어서 소파에 푹 파묻혀서 TV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잠자리에 드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당신의 영혼의 상태를 진단해드리고 싶다.
1.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지 않으면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것이다.
마음은 영혼의 창이고 생각은 마음은 창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영혼을 알려면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면 되고,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면 혼자 있을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면 된다. 그리고 마음이 항상 즐겁고 평안하고 기쁘지 않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을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 없겠지만, 이 말은 필자가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이니까 받아들이든지 아닌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당신 안에 성령이 계시고,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재하며 사귀고 있는 상태라면, 당신의 영혼은 잔잔한 평안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성령과 교제를 나누는 상태가 아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서 오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자유에 대해 무지하다. 그래서 CCM을 흥얼거리거나, 타악기가 쿵쾅대는 찬양집회의 분위기에서 느끼는 감정의 격앙을 성령 충만이라고 착각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성령과 교제는 데서 오는 영혼의 평안은 기도할 때뿐 아니라, 기도하지 않을 때에도 동일하며, 삶의 문제가 없는 무사안일한 상태가 아니라 환난과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임하여야 한다.
2.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미혹의 영의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걱정, 염려, 두려움, 공포, 불안, 의심, 회의, 낙심, 절망, 초조함, 긴장, 조급함, 짜증, 분노,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억울함, 서러움, 자기연민 등의 생각은 악한 영이 넣어주는 공격이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미혹의 영의 포로로 잡혀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미혹이 넣어주는 공격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며, 불행한 사건에 빠져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덕담해주면서 나아질 것이라고 등을 토닥거려 주고 있다. 귀신들이 공격하는 계략을 가르치고, 싸워 이기는 법을 훈련하지 않는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고 위로와 덕담으로 일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그래서 교회에 열정적으로 다니는 교인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유이다.
3.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가 없다면 영혼의 만족은 없다.
우리네 교회에서 기도훈련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 새벽기도회를 비롯한 각종 기도회에 참석하게 만드는 게 전부이다. 기도회에 가서 교회에서 요구하는 기도목록을 나열하고 나서, 자신이 원하는 기도목록을 반복하는 게 기도회의 모습이다. 그 어디에도 성경적인 기도의 목적이나 하나님의 뜻은 없다. 기도란 내 영혼과 하나님의 영이 교제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마치 기도를 하나님을 윽박질러 자신이 요구하는 유익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간혹 기도훈련을 시키는 데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루에 기도를 한 시간 하는 훈련이나 방언기도를 하는 훈련 따위를 가르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이 한 시간 동안 기도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문을 외치는 게 무슨 소용인가?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게 무슨 훈장이라고 되는가? 이런 기도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인가? 성경 어디에 그런 기도를 하라고 명령하였는가? 이렇게 하나님과 깊고 친밀하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으니, 양들이 건조하고 목마른 영혼으로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5~9)
당신의 영혼이 잔잔한 평안으로 만족해하지 않는 이유는,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육체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삶에서 당신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게 육신을 따르는 일인가 영을 따르는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라. 육신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에서 잘되고 부유하게 살며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고, 영을 따르는 사람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하는 영혼의 소망을 만족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세속적인 유익을 얻고자 종교적인 의식과 신앙행위를 반복하는 종교적인 사람으로 남아있다면 영혼의 만족은 꿈도 꾸지 마시라.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인 마귀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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