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은 자유로운가?
자유라는 말을 떠올리면 갑자기 마음이 평안해지고 영혼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자유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자유라는 말을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자유란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먹고 살기 바쁜 현대인들은 자유라는 말자체가 사치스럽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무한한 자유를 약속받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약속을 상기시키는 말씀을 찾아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위의 구절을 종합해보면,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그분 안에 있는 자녀들은 자유가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와서 자유로운 인생을 누리고 계시냐고 말이다. 필자의 말에 곤혹스러워하는 당신의 표정이 읽히고 있다. 당신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에 성실하게 참석하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을 믿는 것과 상관없이, 당신의 삶과 영혼이 자유롭지 않다면 당신 안에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께서 거주하지 않으신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오늘은 당신의 삶의 영역에서 자유가 존재하는 지 살펴보고 싶다.
1. 돈으로부터의 자유
당신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우신가? 아마 백만장자가 아니고는 고개를 끄덕일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만장자라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수십억원의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잠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돈을 빌려달라거나 나누어달라고 성화를 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기 일쑤이다. 이처럼 재산이 많은 이들은 더 많이 불리고 싶어서이거나 아니면 돈을 지키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예전에 재벌회장이 돈 때문에 사옥에서 투신하여 사망한 사건은, 백만장자라도 돈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초들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재벌회장이 부러울 것이다. 왜냐면 먹고사는 일이 평생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 새벽부터 밤늦게 누우며 평생 강도 높은 노동을 하더라도 가족들의 생계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은 게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어린아이부터 고소득을 얻는 직장이나 자격을 얻는 일에 인생을 바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를 찾는 일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그 이유를 말해주는 말씀이 여기에 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의 대가가 바로 위의 구절의 말씀이다. 그래서 아담의 후예인 우리들은 생산성이 없는 세상의 일터에서 평생 땀을 흘려가며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겨우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잊지 않고 해주셨기 때문이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8:18)
세상의 재물이 죄다 하나님의 소유이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말하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자 자녀라고 믿고 있는 우리들은 죄다 돈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를 처지를 살펴보라.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목회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극빈한 삶을 살고 있다. 년 수입이 이천만원이 되지 않는 미자립교회가 전체 교회 중에서 60%가 넘는다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건물월세와 관리비, 차량 운용경비 등을 제외하면 생활비는커녕 용돈조차 궁색할 지경이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목회자들의 사정이 이러할진대 평신도들은 말해야 무엇하리요. 그러므로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다 백만장자의 부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먹고 살고 가족들을 부양하는 생계비가 충족되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2)
그 비결은 위의 말씀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에 전념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재물을 마음껏 맡겨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비결이다.
2. 건강으로부터 자유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죄다 죽는다는 것은 진리이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죽는 과정은 무엇인가? 나이가 들고 늙어서 면역력이 떨어지면 성인병을 비롯한 각종 고질병을 앓다가 시름시름 죽게 된다. 그렇다면 왜 죽는가? 성경은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죄 때문에 죽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인이기에 사망이 필연적이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위의 구절은 지붕을 뚫고 내린 중풍병자를 향해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다. 중풍병의 원인이 죄라는 것이며, 죄를 용서함을 받으며 병이 낫는다는 요지이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를 믿고 영접기도를 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신질환과 고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았는데, 왜 우리네 교인들은 세상 사람과 진배없이 고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가? 이는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며, 죄를 부추기는 악한 영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이 열리자마자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계시며,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은 사도들과 제자들도 스승의 사역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귀신에 대해 무지하며 정신질환과 고질병에 대해 무능하고 무기력하다. 성경에는 귀신들이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먹게 하며, 간질을 일으키고 디스크협착증과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원흉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는 이런 말이 성경에 없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눅13:10~13)
위의 구절에서 ‘귀신들려 앓으며’ 라는 헬라어 원문을 살펴보자. ‘푸뉴마(spirit) 에쿠사(have) 아스데네이아스(illness)'이다. 즉 ’질병의 영을 가지고 있는‘이라는 원문이다. 여기에서 귀신들을 질병의 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시라. 귀신들은 사람의 몸에 잠복하여 정신질환과 고질병을 일으키어 불행에 빠뜨려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귀신들을 쫓아내면서 고질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없다면 당신과 가족들은 언제나 정신질환과 고질병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 여인의 병을 고치시면서, 병에서 놓였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놓였다‘는 헬라어 단어는 ’아포레뤼사이‘이며 ’set free'라는 뜻으로 해방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들이 일으킨 고질병을 해방시키는 영적 능력이 있어야 비로소 모든 질병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중의 하나가 ‘여호와 라파’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3. 사람으로부터 자유
당신의 주변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해지고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평소에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사건이 생기거나 무슨 부탁을 할 때 그런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사람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서열상 위에 군림하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일 것이다. 특히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남편이나 부모 등은 그들이 지닌 지위나 영향력을 이용하여 당신의 자유를 옥죄는 일이 허다하다. 직장에 다닌다면 경영자나 상사가 그런 위에 있을 것이고, 자영업을 한다면 갑의 위치에 있는 회사나 진상고객들이 그럴 것이다. 교회에서는 악한 목회자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사람들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이 어두워진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그렇다면 왜 당신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가? 그 사람에게 당신의 삶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생계비를 벌어다주는 사람이며 무의식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곤 한다. 그러나 남편이 없으면 어떻게 살지 두려움이 몰려오기 때문에 압력에 굴복하고 자유를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특히 직장의 경영자나 상사는 수입의 통로가 되는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 권위적이고 악한 목자는 지옥을 운운하면서 공갈과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만약 필자가 그런 목자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기 바란다. 부모도 그간 베풀어준 희생과 사랑을 볼모로 당신의 효도를 당연시하며 기대하고 있다. 물론 부모를 공경하며 봉양하는 것은 자녀의 도리이지만, 마지못해서 하거나 의무적으로 할 때 자유와 기쁨이 사라지는 것이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146:3)
이유가 어쨌든 간에, 당신이 사람을 의지하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기를 못 피며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물론 가정에서의 남편은 아내보다 영적 위계질서의 우의에 있으며, 직장에서 상사를 잘 섬기며 지혜로운 부모의 뜻을 따르고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를 공경하고 성경적인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억압적이고 비성경적이면 그들의 권세가 두렵고, 그들이 가진 재산이나 수입을 얻는 능력 등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고 있으며, 연약하며 부족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믿음이 없는 불신앙의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는 교인들조차 불안과 염려, 두려움과 불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이들이 허다하다.
4. 신앙행위로부터 자유
주일성수를 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는 크리스천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주일성수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금방 지옥으로 던져질 것같이 위협과 공갈을 퍼붓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 다만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비성경적인 항목을 마치 하나님의 명령인거처럼 가르치고 요구하는 목회자들을 조심하라. 그러나 성경을 통째로 암송하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600여가지가 넘는 율법의 조항들을 철저하게 지켰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독사의 새끼라는 독설을 들으며 지옥의 불에 던져졌다. 기이하지 아니한가? 그 이유는 희생적인 신앙행위의 속내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김에 있지 아니하고, 자신의 의와 자기만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행위의 목적이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기만족으로 삼은 이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여기에 속해있다.
영성학교에서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시키고 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의 습관을 훈련시키고 있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의 목록을 철저하게 그리고 피터지게 싸우는 훈련을 시키고 있다. 그래서 영성학교를 공동체로 섬기겠다며 이곳에 오신 분들은 필자고 코치진의 말에 순종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3년이 넘는 동안 애쓰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령의 사람이 되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된 죄가 있는지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혹시라도 날아올지 모르는 돌 직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지고 있다. 매일 매일 노심초사하며 가슴 졸이고 살아가고 있다. 이게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인가? 이렇게 하는 것이 훈련을 잘 받고 있는 모습인가 머리가 띵하다.
영성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죄를 지은 것이 인지되면 철저하게 전심으로 회개하면 된다. 죄가 생각날 때마다 또 회개하면 된다. 하루에 백번 생각하면 백번 회개하면 된다. 생각나지 않은 것까지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죄에 무지하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면, 당신에게 들어오셔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싸워 이길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할 것은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는 것에 전념하고, 죄를 깨달으면 즉각 회개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도한 세월을 돌이키며 자책감과 죄책감에 눌리고 있다면, 당신은 먼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교만한 모습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의 자유가 없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행위들을 죄다 지킬 수 없고, 온전하고 거룩하며 성경에서 명령하는 수많은 하나님의 뜻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며 대충 교회마당을 밟고 있다. 그러면서 죄책감과 자괴감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신앙의 자유가 있겠는가?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을까? 바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상태가, 바로 천국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할 것이라고는, 성령이 오시기만을 목이 터지라고 쉬지 않고 부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시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와 싸워 이길 힘을 주시고 회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 그 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삶의 평화와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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