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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 - 임병식

Joyfule 2013. 2. 23. 11:27

 

 

동병상련 - 임병식

 

 

늙은 수캐가 뒤늦게 짝을 만나 면총각을 했다고 해서 누가 비웃거나 책망할 사람은 없을 터다. 친구네 집에 갇혀 지내는 코카스파니얼 암컷 다롱이가 점점 배가 불러오자 어떤 녀석이 ‘아비’일까 의견이 분분할 때, 나는 은근히 그 주인공으로 기른 지 오래된 치와와종인 큐라이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정사실로 여기면서 ‘아, 정말 녀석이 이제야 비로소 면 총각을 하려나’하고 감격까지 하였다.

 

말하자면 확신이 서서라기보다 희망사항이었던 것이다. 이놈 말고도 친구 집에는 발발이라는 개가  있다. 하지만 놈을 제쳐 둔 것은 아직 1년이 안된 애송이기도 하지만, 큐라는 사람으로 치면 이미 환갑을 지난  열두 살박이여서,  젊음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안쓰러움 생각 때문이었다. 놈은 그때까지도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이 그러한 것은 순전히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느라고 기회를 놓친 때문이기도 하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딸 텐데 잠시도 주인 곁을 떠나있질 못했으니 그리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지라 그리 바랐던 것이다.

 

 후사를 보는 일도 중요하지 않는가. 그래서 딴에는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그러나 그 바람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다롱이가 두 달간의 임신기간을 거쳐 낳아놓은 새끼를 보니, 그게 큐라를 닮은 게 아니라 생뚱맞게도 발발이 푸름이를 닮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리다고 아예 수사선상에도 올려놓지 않았던,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은 귀에 피도 마르지 않는 어린놈이 사고를 친 것이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걸 보면서 문득, 자손을 남기고자 하는 원초적 본능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열외로 치부한, 어처구니없는 푸름이의 행동도 어쩌면 본능에 충실하고자 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 본성은 겉으로는 그냥 단순한 행위로 나타나지만, 실은 몸속 유전자의 은밀한 이끌림의 작용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 비록 유전자는 몸속에 가만히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생산 활동을 준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이번에 이집트 투탕카멘 유적에서 발견된 완두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려 3300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숨죽이고 있다가 어느 날 불현듯 깨어나 소생했던 것이다.

 

 그걸 보면 대를 이어가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판단이나, 선택으로 규정할 문제는 아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자연계의 순환 고리를 따라야할 문제로 이해함이 타당할지 모른다. 생명의 이치가 그러한데, 우리 집안에도 이 큐라처럼 아직 결혼을 못하고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조카가 한명 있다.

 

농촌은 이미 세 명 당 한명 꼴로 이주민여성과 결혼을 하고 있다는 통계지만, 집안 조카는 농촌에 살지도 않으면서 짝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40을 넘기고 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도청소재지에서 택배운전을 하는 조카는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노력만 기우린다면 짝을 못 구할 것도 없으련만, 독수공방을 면치 못하고 있다. 눈이 높아서 그러는가 했더니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도무지 여자가 따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강권을 하기를 이런 저런 조건을 따지지 말고 ‘살아생전 면 총각을 했다는 말이나 듣게 하자’고 채근을 했다. 그게 세상에 나온 최소한의 보람이라고 여긴 까닭이다. 그게 무리가 아닌 것이, 동물이나 식물이나 종족을 이어가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요, 어느 분이 써놓은 글을 보니 결국 자기는 이것저것 작품이라고 쓰기는 했지만, 결국 남은 건 자식 몇 남매가 아니겠는가 하는 소회를 대했던 까닭이다.

 

 하긴, 오죽 후사 보는 일을 중히 여겼으면 예전 사람들이 노총각은 어른으로 대접도 해주지 않고, 죽어서도 몽달귀신이 된다는 믿었을 것인가. 그래서 대폭 기대치를 낮추라 제안했던 것이다. 젊음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큐라나 조카나 다를 바가 없다.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친구네 집을 방문하니 여전히 큐라는 반겼지만, 내 마음은 썩 가볍지 않았다.

 

 매사를 조심하며 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설혹 좀 구박을 당한들 어떤가. 덩치로 보나 힘으로 보나 비쩍 마른 푸름이 보다 못할 것이 무언가 말이다. 그런데도 너무 앞뒤 재어가며  눈치를 보면서  총각딱지를 때지 못하고 있는 암띤 녀석이 나의 눈에는  참으로 딱해 보이기만 하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