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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동이 아제 - 임병식

Joyfule 2013. 2. 19. 13:46

 

 

막동이 아제 - 임병식

 

 

지난 대선(大選)때는 어느 후보자 아들의 병역문제가 내내 시끄럽더니,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는  또다시 한 장관의  아들  병역문제가 불거져  온통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면서 나는 썩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 누구는 요령을 부려 혜택을 받고 누구는 끌려가 고생하느냐는 그런 형평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병역문제'하면 씁쓸한 기억 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어서다.  주인공은 바로 우리 동네의 막동이 아제. 그는  전시도 아닌데 군에 입대하여 복무 중에 안전사고로 사망을  하고 말았다. 적어도 집으로 보내온 통지내용이 그러했다. 

 

그는 심각한  심신미약자로서  신검 당시 정상적으로만 조사를 했더라도 입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입대가 가능한 을종합격의 판정이 나왔다. 이를 두고 마을에서는 쑥덕공론이 무성했다. 사바사바로 멀쩡한 사람들을 빼돌리고는 그 벌충으로 가지 않아도 될 사람이 끼어 넣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어도 쌀 것이, 그는 외양부터가 어수룩하게 보인데다 숫자도 세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당당히 (?)뽑히게 됐으니 누가 공정한  판정이라 수긍을 할 것인가.

 

그 막동이 아제가 입대하던 날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걱정이 되어 모두들  역으로 나가 전송을 해주었다. 그런데 막상 주인공 막동이 아제는 그런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서 마치 제삿날 막내아들 뛰놀듯 그렇게 좋아하였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몹시 가슴 아파했다.

 

 막동이 아제는 동네에 살 때나 입대 후나, 심심찮게 화제를 뿌렸다. 덩치가 표 나게 크긴 했지만 일이 서툴고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해 지청구나 타박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런 관계로 그는 남의 집 일을 해도 남보다 품삯을 절반 밖에 받지 못했다. 그것도 사람들이 일감을 주려고 하지를 않아서 모친이 나서 사정사정 교섭을 해 얻어내곤 하였다.

 

 그러자니 자연히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때가 많았다. 그러한 그가 한번은 모친과 함께 떡방아를 찧다가 절구로 자기 어머니의 머리를 내려쳐 크게 다쳐놓은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그나마 명맥을 잇던 일자리는 뚝 끊기고 말았다. 그런 터에 군에서는 공짜로 밥을 먹여준다니 감격을 했을 터였다.

 

그는 고향에서 늘 외톨이었다. 또래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나이가 예 일곱이나 칭하진 어린 우리들이 노는 곳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가장 만만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그가 하는 일이란 우리가 내기를 해서 누가 이기면 함께 웃어주고 과자라도 사와서 나눠 먹으면 그걸 얻어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푼수로 비록 을종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군에 갈 수 있는 판정을 받고 돌아왔으니 모두들 의아해 할 수 밖에-.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떤 이는 군에 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성한 귀에다 곯은 달걀을 집어내어 귓병환자로 위장을 하고, 또 누구는 며칠을 굶어서 체중미달을 시도했는데, 그는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이다. 그때 함께 신검을 받던 사람이 전한 말이다.


판정관이,"총을 쏠 수 있겠나?"하고 물으니 "예"라고 대답하고,"훈련도 따라서 받을 수 있지?"하니까 역시 "예" 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예 예 하고 대답 두어 번  영문 모르게 합격의 굴레가 씌여진 것이다. 비록 옛날 일이라고는 하지만 세상에 이런 엉터리 신검이 어디 있는가 싶다.

 

그 결과 잘못된 판정은 업보로 돌아와 고스란히 부대의 부담이 되었다. 왜냐하면 고등 고문관이 되어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아니되는 형편에 놓였기 때문이다. 한번은 자기 집으로 한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일자무식인 그가 썼을 리 만무한 편지가 도착했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편지는 친절하게도 우체부 아저씨가 읽어 주었는데, 그 문구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 투의 것이어서 듣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부모님 전상서氣體後 一樣)萬康하옵시고 가내 제절이 두루 평안하시온지요.불초 소자 막동이는 부대장님 아하 선임하사님의 보살핌으로 軍務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내용이었는데 글자가 반듯 반듯 쓰여 있는 걸로  보아 대필이 분명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뜻을 알아들을 리 없는 그의 양친(兩親)은 읽어주는 낭낭한 음성에 마치 아들의 음성이라도 듣는 듯 눈물범벅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에 그가 휴가를 나왔다. 이번에는 군인 한사람을 대동했는데, 알고 보니 안내자였다. 그는 집에 인계만  해주고는 출발 날짜에 맞추어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길을 찾지 못하니 그런 조치를 한 것이었다. 그때 본 아제는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손은 땟국에 절려 갈퀴손이 다 되어 있고, 얼굴은 깡말라 험하였다. 그런 중에도 그는 때리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배가 고파 살 수가 없다고 하였다. 아마  부대에서 짐으로 치부된 나머지 식사도 제때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따돌림을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던 중에  부대에서 기별이 왔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안전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려했던 기어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통지를 받고 그의 형님이 달려갔다. 그러나 죽은 원인은 알아내지도 못하고 흰 보자기에 싸인 유골 상자만 하나 달랑 목에 걸고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 그의 주검을 우리는 그저 불쌍하게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지금도 궁금한 건 군복무 중에 사망했으니 군인 신분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의당 국군묘지에 묻히는 게 당연한데 ,왜 한줌 재로 고향에 돌아왔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 점이 내내 궁금하였다.

 

하나, 이제는 이미 세월도 많이 흘러 아득해진 과거지사가 되어 버렸다. 물론 사망한 진실도 밝히지 못한 채. 하나 지금도 분노가 스미는 건 그렇게 부족한 사람을 어찌하여 군 입대가 가능한 합격판정을 내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게 두고두고 의문이고 그래서 죽은 주검이 한없이 불쌍하기만 한 것이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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