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마지막 편지 - Pandit Jawaharlal Nehru
P J 네루(1889~1964)
인도의 정치가. 식민지 인도의 독립을 달성한 민족 지도자. 브라만 부호의 아들 출생. 16세 때 영국 유학 후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912년에 귀국하였다. 전 인도 노동 조합 회의 의장·국민 회의 의장 등을 했고, 아홉 차례나 투옥되면서도 인도의 자치 독립 달성을 위해 분투했다. 1946년 임시 정부의 부수상이 되었고, 1947년에 인도 독립과 함께 초대 수상이 되었다. 1952년에 재선되었고, 1957년에는 3선 되었다.
그의 외교 정책은 <중립주의>로 이는 자주적인 외교 노선을 걷는 것이었다. 냉전 시기에 있어 이 외교 정책은 자유·공산 양 진영에서 비난 받기도 하였으나, 그의 노선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후진 국가들로부터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딸인 인디라 간디도 아버지 뒤를 이어 수상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자서전》 《인도의 발견》 등이 있다. 이 글은 그의 명저 중의 하나로 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8월 9일까지 옥중에서 딸에게 쓴 196회의 편지글로 구성된 <세계 역사 순례> 중에서 발췌한 것으로 그의 탁월한 역사관이 드러나 있다.
마지막 편지
인류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진실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과 과학, 그리고 진리의 어떤 측면에 관한 지식은 모두 역사를 통해서 얻는 것이다.
우리들은 과거에 대해서 그 은혜를 고맙게 생각할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여기에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의무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에 대한 의무를 보다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또한 이미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런데 미래는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노력에 의해서 형성할 수가 있다.
가령 우리가,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진리를 잘 활용한다면 미래에는 보다 많은 진리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런데 과거라는 것이, 일면에서는 우리를 속박하는 힘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우리는 미래에 직면해서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능동적 자유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매우 독특한 시대이다. 환멸이 시대이고, 회의(懷疑)와 무확신과 설문(設問)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옛 시대의 신앙이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도 아메리카에서도 이제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고, 우리 환경에 보다 더 잘 조화될 수 있는 진리의 새로운 측면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질문을 하고 같이 토론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의견이나 철학을 전개시킨다.
말하자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시대처럼 ‘설문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설문은 아테네라는 한 도시에 한하지 않고,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세계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불행과 야만과 부정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 압박이 심하게 느껴질 적에는 자칫하면 우리는 마음이 혼란해져서 어떤 길로 나아가면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그때는 영국의 문학자 매슈 아놀드와 함께, 세계에는 아무 뚜렷한 희망이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호간에 성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고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꿈에 그리는 하늘 나라처럼, 항상 새롭고 색깔도 아름다운 그런 세상이 눈 앞에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기쁨도 사랑도 빛도 없고 믿음도 평화도 고통을 더는 수단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승에 사는 한 무찌르고 달아나고 뜀박질하는 소리가 서로 뒤섞여 방향조차 정하지 못한 힘과 힘이 부딪치는 캄캄한 싸움터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순간에는 정말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기력한 생각을 한대서야 우리들의 생활이나 역사에서 올바른 교훈을 배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잘 생각해 보아라. 역사는 우리에게 생성과 발전과 한없이 확장되어 갈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느냐.
인생은 원래 풍부하고 댜채로운 것이다. 거기에는 많은 늪과 습한 땅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큰 바다가 있고, 높은 산이 있고, 아름다운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있고, 가족과 친구 사이의 우정이 있고, 인도의 독립이라는 커다란 공동 목표를 위해서 일하는 동포애가 있고, 음악과 책과 사상의 제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여, 우리는 땅에서 사는 땅의 자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우러러보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심할 점이 있다. 우주의 아름다움 앞에 감격하고, 사상과 상상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불행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들의 고통을 못 본 척하고 자시 혼자서만 그 감격의 세계로 달아난다면 참으로 용기 있고 동포애를 나타내는 짓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인디라여!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생각은 그게 옳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실제에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동은 사상의 종점이다’라고 우리들의 친구 로망 롤랑은 말하고 있지 않느냐.
행동으로 발전하지 않는 사상은 기형아이고 속임수이다.
모든 행동에는 -큰 행동이나 작은 행동이나 사사로운 행동이나 공공의 행동이나 거기에는 으레 다소의 모험과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과를 염려해서 활동이 미미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오히려 멀리 떨어져서 쳐다볼 계제에 더 심하게 느껴진다. 우리 인생의 모든 장면은, 실제로 거기에 접근을 해서 보면 참으로 절망적인 상태라는 것이 그렇게 흔치 않다.
인생은 그게 지금 어떤 형편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불안은 흥미와 성공을 자극하는 좋은 반려라고 생각하는 게 옳은 태도일 것이다.
생활이 너무 평범한 상태에 있으면 때로는 지리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며, 모든 것이 다 뻔한 노릇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기쁨을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높은 산에 올라 곤란이 극복되고 위험이 정복되는 상쾌감을 느껴 보려고 한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곤란이 크면 클수록 그 산에 오르는 기쁨은 더욱 크다.
오늘날 우리 인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신체의 안전이 보장되고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의 통치 밑에서 우리는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낮은 골짜기에서 사느냐, 그렇지 않으면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넓은 조망(眺望)을 즐기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서 높은 산에 오르느냐- 하는 갈림길 앞에 서 있다.
이만 그치겠다. 이것이 마지막 편지는 아니다. 아버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너에게 많은 편지를 써 보낼 작정이다. 다만 세계 역사를 순례하는 편지는 일단 여기서 끝을 맺는다.
-1933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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