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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편지 - Pandit Jawaharlal Nehru

Joyfule 2013. 5. 17. 09:11

 

 

딸에게 주는 편지 - Pandit Jawaharlal Nehru


 

P J 네루(1889~1964)
인도의 정치가. 식민지 인도의 독립을 달성한 민족 지도자. 브라만 부호의 아들 출생. 16세 때 영국 유학 후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912년에 귀국하였다. 전 인도 노동 조합 회의 의장·국민 회의 의장 등을 했고, 아홉 차례나 투옥되면서도 인도의 자치 독립 달성을 위해 분투했다. 1946년 임시 정부의 부수상이 되었고, 1947년에 인도 독립과 함께 초대 수상이 되었다. 1952년에 재선되었고, 1957년에는 3선 되었다.


그의 외교 정책은 <중립주의>로 이는 자주적인 외교 노선을 걷는 것이었다. 냉전 시기에 있어 이 외교 정책은 자유·공산 양 진영에서 비난 받기도 하였으나, 그의 노선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후진 국가들로부터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딸인 인디라 간디도 아버지 뒤를 이어 수상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자서전》 《인도의 발견》 등이 있다. 이 글은 그의 명저 중의 하나로 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8월 9일까지 옥중에서 딸에게 쓴 196회의 편지글로 구성된 <세계 역사 순례> 중에서 발췌한 것으로 그의 탁월한 역사관이 드러나 있다.

 


첫번째 편지

생일날이 돌아오면, 너는 으레 어떤 선물을 받고, 축하의 말을 듣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형무소 안에서 무엇을 선물로 보내야 할지......, 직접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을 보낼 수는 없으므로, 대신 바람이나 마음처럼 생긴 것, 형무소의 높은 담도 가로막지 못하는 것을 보내야겠다.

이 아버지가 평소에 고리타분한 설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따금 그런 생각이 나면 나는 언제나 옛날에 책에서 읽은 어떤 ‘대단히 현명한 사람’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오른다.

 

1천 3백여 년이나 아득한 옛날, 중국으로부터 한 나그네가 지식을 구하여 멀리 인도에 온 일이 있었다. 그는 현장(玄裝)이라는 사람으로,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 온갖 고난을 무릅쓰면서 왔다.

 

지식에 대한 갈망이 그렇게나 열렬했던 것이다. 그는 나란다 대학에서 꾸준히 학문을 닦아 법사(法師)라는 학위를 얻고 돌아가서 <서유기>라는 여행기를 썼는데, 내가 머리에 떠오른다고 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은 바로 그 책이다.

먼 옛날, 한 기이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허리에 구리로 만든 띠를 두르고 머리에 횃불을 이고 있었다. 행색이 하도 우스꽝스러우므로 사람들이 까닭을 물은즉,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지식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가 터질까 염려스러워 구리띠를 두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어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횃불을 켜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이다’라고.

 

아버지는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배가 터질 염려가 없으니 다행한 노릇이다. 따라서 구리띠 같은 것을 허리에 두를 필요도 없다. 그건 어떻든지, 아버지는 얼마 안 되는 지식이나마 뱃속에 들어 있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그리고 지식이 깃 드는 장소가 어디든 간에, 아직도 거기에는 더 많은 지식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을 것이며, 그 이상 여지가 없는 상태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아무리 배가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지식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하면 어찌 그것으로서 현인인 척하고, 남을 가르치는 척할 수가 있을까.

 

그러므로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가를 분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교를 하는 일이 아니고 서로 의견을 교환해서 토론하는 일이다라고. 사람이 서로 의논을 하면, 비록 조그마한 부스러기일지라도 거기서 진리가 튕겨져 나오는 법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게 믿고 있다.

아버지는 집에 있을 적에 너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했었지. 하지만 세계는 우리가 여태까지 토론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크다. 우리가 알고 있는 테두리를 넘어선 불가사의하고 신비스러운 커다란 세계가 있다.

 

그렇다고 하면, 아버지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구리띠를 두른 저 오만한 사람처럼 배울 건 이미 다 배웠다던가 이제 나는 대단한 현자가 됐다던가 하는 사람은 꿈에도 가질 수가 없다.

달리 생각하면, 우리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도 오히려 고마운 일일지도 모른다. 가령 무한한 지식을 가진 현자(賢者)가 실제로 이 세상에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 사람은 때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것을 심심하게 여기지 않겠지. 그런 사람은 무엇을 발견하는 재미나 새로 배워서 터득하는 기쁨을 더 이상 맛보지 못할 것이다-그 기쁨이야말로 사람이 세상을 사는 가장 큰 보람인데.그러므로 아버지는 너한테 대해서도 설교를 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렇게 편지 형식을 취하다 보니까 불가불 일방적으로 될 수밖에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집에서 우리가 말을 주고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네가 스스로 연구할 재료를 여기에 내놓는 것으로 알아주기 바란다.

 

이제부터 아버지는 세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너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하는데, 한 가지 미리 말해 둘 요점이 있다.

사람은 간혹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때가 있다. 또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지 구별이 잘 안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테스트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니, 잘 기억해 주기 바란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남의 눈으로부터 숨어서 하지 말아라. 또는 숨기고 싶은 짓을 하지 말아라. 사람은 태양 밑에서 살고 있다. 우리 나라 인도를 사랑하는 마음에 있어서도, 또 자기 한 사람의 일상 생활에서도 태양을 벗으로 삼아야 한다.

네가 이것을 실행하면,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빛의 딸’로 자랄 것이다.

 

-14세 된 인디라 프리아달시니에게,

1930년 10월 26일 나이니 중앙 형무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