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세상보기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1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

Joyfule 2006. 6. 27. 03:25

"美외교 비전, 民主主義확산 통한 全세계 폭정 종식"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1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1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장문의 글을 통해 미 외교정책의 기본틀을 설명했다. 민주주의 확산을 통한 전 세계 폭정종식. 부시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연설에서 밝힌 미 외교의 궁극목적을 거듭 밝히며 과거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소련과 중공 등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세운 정책들이 지금 결실을 맺은 것처럼 지금의 미 외교정책도 성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편집자 주>

올해 초 국무부에서 첫 업무를 시작하며 나는 사무실에  애치슨 전 국무장관의 사진을 걸어놨다. 반세기 전 미국이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를 새롭게 재정비하려할 때 애치슨 장관은 지금 내가 있는 이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애치슨 장관과 당시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국제정치의 양상이 급격히 바뀌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가 우리의 상상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내 전임자의 사진은 전례없는 변화의 시대에서 위기관리에 대한 전통적인 외교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우리는 과거의 원칙과 토론을 뛰어넘어야 하고 우리의 이익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 불안정한 현상을 바꿔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변화된 세계에 대한 현실적인 외교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 취임연설에서 이를 위한 비전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전 세계 폭정을 종식시킨다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모든 나라와 문화에 민주적 운동과 제도들이 증가하도록 이를 추구하고 돕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이것은 분명히 대담한 행동 과정이며 미 외교정책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일치하는 것이다. 해리 트루만, 로날드 레이건 등과 같은 대통령 당시의 외교정책과 더욱 그렇다.

트루만 및 레이건 대통령의 야망적인 정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외교도 성공할 것이다. 그것은 이 외교 정책이 낙관적이고 이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른 전략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현실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美 다른 강대국과 ‘자유를 위한 힘의 균형’ 유지>

우리는 지금 수 세기에 걸친 국제적인 관행과 전례들이 지난 15년동안 다 뒤엎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가령, 강대국 간 폭력갈등의 양상은 없어지고 있고 이들은 전쟁을 준비하기보다 평화를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이런 놀라운 변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일본*러시아*유럽연합, 중국*인도와 동반자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한 힘의 균형’(a balance of power that favors freedom)이라는 지구적 안정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350여년 전에 만들어진 현대 국가 체제는 주권이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주된 국제정치 행위자이고 모든 국가는 자기 영토에서 비롯되는 위협을 통제할 수 있고 또 그럴 의지가 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가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있다. 우리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은 강력하고 공격적인 국가가 아니라 약하고 실패한 국가 내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약하고 실패한 국가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들의 위험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 물건, 정보 등이 지구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지금, 질병과 테러와 같은 국제적인 위협은 한 국가의 정규군에 필적하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한 국가 내부의 위협이 이를 통제할 능력이 없는 그 정부당국으로 인해 세계로 흘러나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약하고 실패한 국가는 질병의 전 세계 확산, 범죄자*테러리스트들의 활동,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들의 확산을 초래하는 지구적인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국제적 권력배분보다 그 정권의 근본적인 특성이 더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것이다.

우리 외교의 목적은 자기 국민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국제사회에서 책임있게 행동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잘 통치되는 국가들들의 세계가 이뤄지도록 돕는 것이다.

<약하고 실패한 국가가 가장 큰 위협>

모든 국가에서 민주적 제도가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도덕적인 공상이 아니다. 이것은 현존하는 도전에 대한 유일한 현실적 대응이다.

특히, 세계의 한 지역은 정권의 속성에 기인한 문제들이 다른 지역보다 시급하다. 중동의 ‘자유 결핍’은 악하고 치명적인 증오의 이념이 자라는 토양을 제공,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폭탄을 하게 하고 비행기를 건물에 충돌시키고 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공개된 정치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필요와 불만이 해결되지 않으면 희망을 잃고 그늘 속에 살면서 폭력계획을 가진 악한 사람들의 먹이가 된다. 이런 사회에 경제개혁만을 추구하고 자유결핍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바라는 것은 환상이다.

중동에 민주주의 역사가 없었다고 해서 그것이 안될 것이라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모든 행동에 전례를 요구하면 어떤 것도 시도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이 지역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와 민주적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인간의 열망이 세계를 바꿔왔기 때문이다. 독단적인 비평가와 문화 결정론자들은 아시아 가치 혹은 라틴 문화, 슬라브 압정, 아프리가 부족주의 등으로 각 지역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우리의 외교는 민주주의가 국가 간 평화와 안전을 가져올 유일한 길이라는 분명한 진리에 따라 이뤄질 것이다. 민주주의만이 국가 내부의 자유와 정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의 목적 가운데는 우리 힘의 제한과 겸손이 암시되어 있다. 폭정과 달리 민주주의는 본질상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확신에 찬 주민들이 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번의 선거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제도 즉, 법의 지배, 법원의 독립, 언론과 사적재산 보장의 자유 등을 매일 세워가는 과정이다.

미국은 이런 결과를 만들어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각 개인들이 자신의 생활과 국가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지지할 때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게 되어 우리 힘의 가장 큰 합법성을 얻을 수 있다.

<자유 결핍 중동에 경제개혁만 추구하는 것은 환상>

미국이 오늘날 하려는 외교는 야망적일 뿐 아니라 혁명적이다. 그러나 무모한 것이 아니다. 보수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변화를 수용하고 현상을 바꾸려는 정책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정책의 장점까지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트루만이 말한 것 같이 세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현상유지는 신성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현실주의”(realism)란 학파가 진짜로 현실적이라면 그들은 ‘민주주의 없는 안정은 거짓 안정’이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바른 처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9*11 테러 후 누가 중동의 현상유지가 안정적이고 이로운 것이며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는가? 테러를 양산하고 수출하는 중동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신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곳은 대량파괴무기가 확산이 더 심해지고 있고 권위적인 정부는 자신들의 실패를 무고한 시민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레바논은 시리아의 점령하에 시달렸고 부패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주민들의 열망보다 자신들의 정권유지에 관심이 있었으며 사담 후세인과 같은 폭군은 자신의 국민들을 살육하고 주변 이웃을 불안정하게 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의 희망을 해치고 있었다. 미국이 중동의 안정을 파괴하기 전 중동은 훌륭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순전히 몽상이다.

우리가 이 몽상을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난 몇년간 이뤄진 일들은 못보았을 것이다. 레바논은 외국의 점령에서 벗어나 민주적 개혁을 진행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공공연히 밝히고 주민들의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 이집트는 헌법을 개정, 다당제 선거를 도입했고 쿠웨이트에서는 여성이 완전한 시민이 되었다. 이라크는 반군의 위협 앞에서도 역사적인 선거를 치뤘고 새로운 헌법을 마련*비준했으며 곧 새로운 합법 정부 선출을 위한 선거를 가질 것이다.

<“민주주의 없는 안정은 거짓 안정”>

지난해 이맘때만해도 이런 전례없는 발전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애치슨이 1953년 국무장관직을 그만둘 때 그가 마련한 정책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그는 40여년 후 유럽의 강대국 간 전쟁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미국과 세계는 그가 내린 결정의 열매를 수확하고 있으며  공산주의 붕괴를 관리하고 있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애치슨과 같은 지도자들은 선례가 부족해도 미국의 외교를 원칙에 따라 운영했기 때문에 또 그들이 세계를 더 낫게 바꿀 수 없을 만큼 무력하다고 믿지 않았기에 민주적 평화의 약속은 지금 유럽 전체와 아시아 대부분에서 현실이 되었다.

내가 후에 국무장관을 그만둘 때 그 누구도 우리 외교가 이룬 것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원칙의 확고한 기초를 놓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미래의 세대가 완전히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세계 건설이라는  미국의 비전을 깨닫게 될 기초 말이다.  

(편집자 주: 애치슨 국무장관은 1949년?壙? 1953년까지 미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2차 세계대전 전후 급격한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미 외교정책을 수립해갔다. 그는 소련*중공 등 공산주의 국가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자 이에 대처하기 서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NATO)을, 아시아에서는 미일안전보장조약, 미필리핀상호방위조약 등을 체결했고 미국의 태평양방어선이 ‘애치슨 라인’을 설정했다.)

 

이상민기자  200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