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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철저한‘헌법의 수호자’ 2

Joyfule 2007. 3. 17. 01:42

링컨은 철저한‘헌법의 수호자’

 

남북전쟁도 노예해방뿐만 아니라 헌법을 깬 남부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링컨은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평가

“극단적 정책보다 신중하고 검증된 가치를 추구”

상대에 대한 연민ㆍ관용ㆍ아량도 넘쳐나…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부러지지 않고 정책 성공시켜

▲ 만년의 링컨 대통령.

 

 링컨 대통령은 독했다. 그 착하고 정직하고 위대한 링컨 대통령이 독했었다고? 그렇다. 링컨은 연방의 정통성, 독립선언서와 헌법의 절대성에 관하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고, 두 치의 영합도 없었다. 연방의 정통성, 독립선언서·헌법의 절대성, 흑인노예 해방은 링컨 대통령의 삼위일체(三位一體)였다. 이 삼위에서 어느 것이 우위고 하위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링컨에게는 이 셋이 다 절대적이었고 강력한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이 셋을 다 지켜내고 성사시켰다.


 

링컨은 젊은 시절부터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철저히 연구하고 외웠다. 그래서 연설을 할 때도 성경은 물론 항상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인용하고 해석하고 국민에게 가르쳤다. 링컨은 1860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다음해인 1861년 2월 11일,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자신의 고향과 같은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를 떠나 수도 워싱턴 DC까지 12일 동안 여행한다. 링컨은 여행 도중인 2월 22일,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에 모인 청중에게 독립선언서의 뜻을 재확인하는 연설을 했다.


“저는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 매우 감격스럽습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체제가 태어날 수 있게끔, 모든 지혜와 애국심과 원칙에 대한 충정을 모았던 곳이 바로 이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적으로 한번도 우리 독립선언서에 결집되어 있는 사상에서 벗어난 의견을 고려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자문한 적이 많았습니다. 무슨 대단한 원칙이 있었기에 우리 연방이 이토록 오래 유지되어 왔던가? 그것은 우리가 단순히 영국에서 떨어져 나와 연방을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만 아니고 온 세상, 먼 후대까지 자유를 확실하게 해줄 독립선언서에 담긴 사상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 원칙에 의하여 우리가 우리나라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럴 수 있다면 그리고 제가 그 일에 한몫을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저는 제일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그런 원칙에 의하여 나라를 구할 수가 없다면 저는 그런 원칙을 포기하느니 차리리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링컨은 일찍부터 모든 사람에게 “법을 지키자. 무슨 일이 있어도 법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남북전쟁을 한 것도 노예제도보다는 남부의 반란세력 제주(諸州)들이 미 합중국의 헌법을 무시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