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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철저한‘헌법의 수호자’ 3.

Joyfule 2007. 3. 18. 02:13

링컨은 철저한‘헌법의 수호자’

 

 

링컨은 28세 되던 때인 1838년 1월 27일,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청년회관에서 ‘우리나라 정치적 체제의 영구성’이란 연설을 통해 준법정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미국인,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일하는 시민은 우리 선조가 독립전쟁에서 흘린 피로 서약해야 합니다. 국법에 무조건 따라야 하고, 남이 국법을 어기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서약해야 합니다.”


 

▲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을 끝내고 내려가는 순간. 네모 안이 링컨.

 링컨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미국의 어머니들은 무릎에서 재롱을 떠는 어린 아이에게 법의 존엄성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모든 학교에서, 신학교, 대학교에서도 학생에게 법의 존엄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과서에도 법의 존엄성을 적어놔야 합니다. 모든 교회 강단에서, 의회에서, 법정에서도 법의 존엄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법을 우리나라의 종교로 만듭시다. 노인이거나 젊은이이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무슨 피부색으로 어떻게 보이든 간에 우리 모두가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일리노이주에서만 조금 알려졌을 뿐인 지방정치가 링컨을 1860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이어서 미 합중국 16대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연설이 있다. 링컨은 당시 하버드 대학에 다니던 큰 아들 로버트를 만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동부로 온다. 링컨은 1860년 2월 27일 뉴욕시의 쿠퍼 유니언 대학에서 긴 연설을 했다. 링컨의 쿠퍼 유니언 연설은 그 유명한 대통령 2기 취임 연설문보다 10배나 길고, 그보다 더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보다는 28배나 더 길다.


링컨을 하루 아침에 전국적인 유명 정치인, 그리고 대선 후보감으로 만들어준 게 이 연설이다. 그는 여기에서 ‘건국 아버지(Founding Fathers)’들이 만든 헌법에 서명한 39명 중 21명은 노예제도의 확산을 반대했고 노예제도의 점진적 소멸을 원했다고 역설했다. 노예해방의 당위성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다. 그는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북부 주민의 지역감정에 호소한 것이 아니라 헌법의 제정 과정과 역사를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건국 아버지들의 생각과 헌법에 합치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쿠퍼 유니언 연설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 모두 정의는 막강하다는 진리를 믿읍시다. 우리 모두가 그런 믿음을 갖고서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해야 하겠습니다.(Let us have faith that right makes might, and in that faith, let us, to the end, dare to do our duty as we understand it.)”

 

링컨은 대통령에 두 번 당선되었다. 그의 제1기 대통령 취임 연설은 2기 연설문처럼 명문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링컨은 이 연설에서도 자신의 모든 책임과 권리가 헌법에서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의 헌법을 고찰해 보면 연방이 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능력이 닿는 한, 헌법이 저에게 맡긴 것처럼, 우리 연방의 법들을 모든 주에서 성심껏 집행할 것입니다.”

▲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 묘지 봉헌식에 모인 북군 군인과 시민들. 남북전쟁 전문 사진사 매슈 브레이디가 찍었다.

게티즈버그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63년 8월 26일, 링컨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제임스 컹클링을 통하여 국민에게 다음과 같은 공한(公翰)을 보냈다. “저는 미 합중국 헌법이 정의한 대로 제가 국민의 머슴이란 것을 주저 없이 인정합니다.”

이렇게 법의 존엄성을 일찍부터 부르짖은 링컨이 대통령이 된 다음, 과연 실제로 법을 무조건 끝까지 집행하고 준수하고 지켰는가?


사가(史家)들은 이 명제에 관하여 지난 140년간 논쟁을 많이 해왔다.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한 예로서, 링컨이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대표적인 영미 관습법인 하베아스 코르푸스(habeas corpus·신병인도법:영장 없이 시민을 체포구금할 수 없다는 법)를 유보시킨 일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