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력 - 노길상
어릴 때는 시력이 좋았습니다.
2.0의 시력으로
세상을 밝게 보며 살았습니다.
방학을 하여 고향에 내려갈 때면
강을 건너고 커다란 언덕을 넘어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어머니를 빨리 보고 싶은 생각에
숨이 턱에 차도록 언덕을 뛰어올랐습니다.
언덕에 올라서면 저 멀리 집이 보입니다.
너무 멀어 초가집이 성냥갑처럼 가물가물 했지만,
저의 2.0의 시력과 그리움의 시력은
어머니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농사일로 인해 등이 굽어버린
어머니의 새우 같은 모습은
저의 마음을 쓸어내리곤 했습니다.
제가 서 있는 언덕이
흐려진 시력으로 전혀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허리를 펴고
언덕을 향해 시선을 맞추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는 흐르는 땀 위로
또 한 줄기의 눈물을 섞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시력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1.5, 1.0, 0.7 ......
이제는 안경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시력은
떨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안경은 썼지만 작은 것도 잘 보입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 방울이 보입니다.
이슬 방울 속에 숨어 있는 저의 모습이 보입니다.
작은 들꽃이 보입니다.
들꽃 속에 숨어 있는 꽃술이 보입니다.
꽃술 속에 숨어 있는 사연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습니다.
빗방울이 보입니다.
안개의 속삭임이 보입니다.
돌덩이에 눌렸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기어이 돌을 밀치고 올라오는 새싹이 보입니다.
행복합니다.
작은 것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이 세상에 작은 것들이 많아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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